그녀의 선택은 대담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이 이번 음반에서 선보인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EMI)은 각각 볼셰비키 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1917년과 스탈린의 문화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던 1948년의 작품.

두 곡 모두 러시아 격동기의 불안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강렬한 음악이다. 두 바이올린 협주곡 사이에는 30여 년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격한 감정과 공포심을 비틀어진 냉소와 폭발적인 리듬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은 극한의 기교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난곡(難曲).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두려움과 정복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사라 장은 지난해 10월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과의 내한 연주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 1번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당시의 불꽃 튀는 열연을 기억하는 이라면 사라 장의 신보에 더욱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음반에서 풍부한 질감의 사운드로 관현악의 멜로디 라인을 강조, 독주 바이올린에 생기를 더했다.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은 러시아 혁명기의 작품이지만, 프로코피예프가 첫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시절에 작곡된 음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간중간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사라 장은 그동안 힘차면서도 관능적이고 충실한 톤으로 음악 팬들을 사로잡아왔지만,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서는 섬세하고 다양한 표정을 적절히 구사하며 곡의 서정미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번 음반을 통해 사라 장은 음악적으로 한결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최은규·바이올리니스트·부천 필하모닉 공연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