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1회말 1사후 A팀의 주자 1,2루 찬스. 번뜩이는 눈으로 4번타자 K가 들어선다. 시작부 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대 투수는 데뷔 7년만에 처음 1군 마운드에 오른 H. 볼카운 트 1-2에 몰린 투수의 4구째 바깥쪽 직구를 K가 마음껏 휘두른다. 그러나 틱 빗맞은 타구 는 유격수 정면 병살타가 돼 공격이 끝나버린다. 헬멧을 내동댕이치며 K가 하는 말. "에이, 저런 삐꾸한테…."
'삐꾸'라는 말, 자주 쓰시죠? 일상생활에서 '좀 모자 라는 사람'이란 뜻으로 많이 쓰이는 이 말이 사실은 야구장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삐꾸'는 'B급(B級ㆍびきゆう)'의 일본어 발음, '비 큐'가 한국어의 된소리 발음을 거치며 재가공된 말 입니다. 일본야구에서는 어떤 장비의 품질이나 선 수 기량에 등급을 매겨 'A급', 'B급' 등으로 차별적인 표현을 합니다. 앞선 상황 예문에서 응용한 것처럼 야구선수들은 '삐꾸'라는 말을 '기량이 함량 미달인 선수' 또는 '뭔가 엉성하고,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선수'를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삐꾸'라 는 표현이 해당 선수에겐 모욕적인 언사가 되겠지만 웬만한 프로선수 치고 이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겁니다. 설령 고교때까지 한가닥 하던 선수였다 쳐도 프로에 들어 오면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신인이 프로와 아마의 어쩔 수 없는 수준차를 노출할 때 프로 코치들은 흔히 "너 삐꾸였구나"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내심 자존 심이 상한 선수들은 이때부터 더욱더 부지런히 훈련에 매달리지요. 또 스타급 선수가 훈 련 부족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코치의 입에서 나오는 "삐꾸 됐구나"라는 말은 '정신 차 리라'는 쓴소리에 해당합니다.
(스포츠조선 김태엽 야구팀 기자)
입력 2006.01.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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