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 아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건강'이나 '행복' 등 그 해에 서로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것이 좋은 전래 예절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는 '자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 마시는 법도 배워야지' 등 성인 대접을 하는 것이 덕담일 것이다.

조선 시대의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 중 첫 번째가 관례(冠禮)와 계례(荇禮)이다. 관례와 계례는 정월 달 길일을 택해 남자는 상투를 매고 여자는 쪽을 찌어 성년이 된 것을 선포하는 의식을 말한다. 성년식의 절차 중 초례(醮禮)에서 당사자는 천지신명에게 세 번 술을 올리고 나서 술을 한잔 받는다.

성년이 된 이들은 어른 대접을 받게 되지만, 어른으로서의 책임도 지게 되는 것이다. 성년식은 술과 찬을 내어 손님을 대접함으로써 마무리된다. 관례를 치른 이들에게 비로소 술을 마실 수 있는 자격이 주어 지는 것이다. 이같이 술은 우리의 전통 문화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 술을 나눠 마시는 풍습을 음복이라 한다. 특히 설날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는 것을 도소주(屠蘇酒)라 하여 어린 사람부터 노인까지 차례로 마셨다. 음복의 풍습은 가족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의식의 일종이었다. 한편으로 음복 문화는 어린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움으로써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올바른 음주 습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음주 문화는 현대 서구 문명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미국보다 가족간의 유대가 깊어 부모가 10대 후반의 자녀들과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페인 등 남부 유럽에서는 가족들이 밤 늦게까지 어울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즐겁게 술 마시는 풍경에 익숙하다. 따라서 미국의 청소년보다 유럽의 청소년이 음주로 인한 사고가 적다고 한다.

설날이 되면 그 동안 흩어져 살던 일가 친척들이 고향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여기서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술을 접하게 된다. 필자도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음복주를 받아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1960년대의 가족 제도에서는 청소년들이 항시 손 위 사람들의 시야에 있었기 때문에 술로 인하여 문제가 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오히려 어른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좋은 술 버릇을 익힐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환경은 어떠한가? 일년 내내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돌볼 수 없다면 음복 문화는 비록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 사회인들에게는 정말 좋은 전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집안의 어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 딸에게 '맑고 향기로운 이 술을 늠름한 너에게 줄 테니 부디 건강하고 큰 뜻을 펴거라' 라는 권주사와 아울러 차례상에 올렸던 술을 권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일까?

(이종기 조니워커스쿨 원장{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