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김활란의 도발적인 단발머리

"수술을 하면 극히 간단하게 될 수 있고, 그 쌍꺼풀이 영구히 갈 수 있으며, 못생긴 자기가 어쩌면 이렇게 이뻐졌을까, 잡아 째진 듯하던 눈이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눈이 되어 자기의 용모가 자기 자신도 의심하리만치 달라져버린다…."(여성, 1937년 7월호)

100년 전 한국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고 여전히 남성들에게 순종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여성연구소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함께 1년간 구축, 최근 문을 연 웹사이트 '한국근대여성교육과 신여성문화'(newwoman.culturecontent.com, 일부 유료)에는 1880년대부터 1945년 이전의 조선 여학생들과 신여성들의 삶이 집대성돼 있다. 총연출을 맡은 정미경 연구원은 "100년 전 여학생들 또한 투르게네프의 '격야'(隔夜·전날밤)를 읽고 연애를 꿈꾸었으며, 머리를 자르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여선생님을 동경하면서 '결혼은 여학생의 무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바타 50종으로 복원한 당시 여학생 교복 변천사가 재미있다. 천편일률 세일러복이 아니다. 경성여상 학생들은 빨강·초록·갈색이 어우러진 줄무늬 블라우스에 수박 색 맞주름 점퍼스커트를 입었다.

체육복도 이 시기 처음 등장한다. 흰 셔츠에 '블루머'라고 불렸던 반바지를 받쳐 입은 배화여학교 농구복이 대표적. 문호경 연구원은 "당시엔 교복을 통해 학교의 특징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해 치맛주름을 몇 개 넣느냐, 어떤 천을 사용했느냐가 무척 중요했다"고 전했다.

1920년대 여학생들 사이엔 뜨개질로 짠 목도리가 대유행했다. 하지만 그 넓이가 갈수록 넓어진다고 해서 학교의 단속을 받았다. 목도리뿐 아니다. 교육자 김활란의 상고머리식 단발과 유행은 '모던 걸=못된 걸'이란 말을 낳으면서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신여성들은 꿋꿋했다. 요즘 입어도 손색이 없는 '최승희 원피스'를 비롯해 여성 비행사 박경원이 쓴 종 모양의 모자가 유행했고, 1930년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입은 투피스들이 직장 여성들 사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박정애 연구원은 "근대교육을 받은 이들은 서양 여성들의 자유로운 대인관계와 직업 세계를 동경하면서 자신의 삶도 그에 맞게 계획하고 싶어했다"고 설명한다. '연애와 결혼' 분야를 맡은 권보드래 서울대 국문학과 강사는 "100년 전 여성의 삶이 현재와 어떻게 닮아있고 다른지 이해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주체적인 역사로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