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미국의 정치와 문화 양쪽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해로 꼽힌다. 익명의 제보자(deep throat) 도움으로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도청 대통령' 닉슨을 하야시켰고, 그 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포로노 영화가 정식 극장에 걸렸다. 제목은 '딥 스로트'(Deep Throat). 익명 제보자의 별명과 발음은 같았지만, 의미는 훨씬 더 불온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 성감대가 자리잡고 있는 여자를 뜻하는 황당한 포르노. 뉴욕은, 아니 미국은 양지로 나온 포르노에 경악했지만,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열광했다.
한 세대가 흘러 2005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Inside Deep Throat·12일 개봉)는 바로 이 포르노를 둘러싼 제작 비화와, 성(性)에 대한 미국 문화의 이중적 태도를 교묘하게 교차 편집하며 지적인 관객들을 유혹한다. '딥 스로트'에 대한 말초적 호기심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은 좌절할 것이다. 그 정도 수위의 비주얼은 이제 클릭 한 번으로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딥 스로트'의 무게중심은 이 포르노를 놓고 벌어진 표현의 자유 논쟁, 가짜 페미니즘 소동, 정부의 속죄양 찾기 등에 놓여 있다. 특히 포르노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1949~2002)의 기구한 인생역정은 이 흥미로운 다큐의 백미 중 하나다. 제작비 2만5000달러로 전세계에서 6억 달러를 벌어들인 전설적 포르노 '딥 스로트'의 여주인공이었지만, 페미니즘이 지배하던 80년대에는 '포르노 추방운동'의 전사(戰士)로 변신했고, 90년대 들어서는 다시 끼니를 위해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이율배반 인생. 영화는 공화당과 민주당 등 정권에 따라 '음란물의 수괴'와 '표현의 자유의 상징'을 왕복하던 '딥 스로트'의 역설을 그 자리에 포개놓는다.
800시간의 인터뷰를 90분으로 압축했고, '이유없는 반항' '이지 라이더'의 주연 데니스 호퍼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신설 극장 'CQN명동'(옛 캣츠21극장)은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12일 개관한다. 총 5개 스크린 중 하나는 일본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된다. (02)774-9002.
입력 2006.01.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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