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중구 초동 스카라 극장 건물 일부가 철거되었다. 건물 앞부분 일부만 파괴되었지만 그 흔적을 보면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스카라 극장은 1935년 약초 극장이란 이름으로 세워진 영화 전용 극장으로 1940년대에는 수많은 영화와 악극이 올려져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었으며, 전쟁 중에도 수도 극장으로 쉼 없이 움직였고, 스카라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슬픔을 주었던 추억의 장소이다.
특히 반원형으로 돌출된 건물 현관과 로비 부분의 독특한 모더니즘 건축양식은 1930년대 모습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 몇 안 되는 극장이었다. 또한 내부 공간도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아 거대한 도심 속에서 작지만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의미가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스카라 극장이 허물어짐에 따라 이제 우리에게 근대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문화 공간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1930년대 대표적인 극장이었던 동양 극장의 자리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국도 극장도 소리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명치좌란 이름으로 1935년 세워진 명동의 옛 국립극장만이 복원 추진 중에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문화라는 말이 존재하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요즘 우리는 한류니 문화 콘텐츠니 하며 문화 강대국인 양 어깨를 으쓱인다. 그러나 많은 케이블 채널과 위성 채널의 영화 채널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지만 그 기본이 되는 문화 채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문화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곳에 한 민족의 문화는 형성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며 모든 걸 허물어버리고 알맹이 없이 새 것만을 추구하는 자리에는 공허만이 남을 것이며, 대량 생산 대량 소비만을 지향하는 문화적 발상은 결국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를 문화 그 자체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되지 않고, 문화를 경제 논리로 생각하는 발상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을 때는 이런 일들은 그냥 소리 소문 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한류나 문화 콘텐츠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흔히 이야기하듯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일 텐데 알맹이 없는 이미지만을 강조하고 전통을 파괴해버렸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한국문화란 있는 것인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인문학 연구에서 하나의 화두가 되는 것이 '근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근대는 그리 먼 과거가 아님에도 그저 문자로밖에 인식할 수 없다.
훗날 근대 양식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될 것인지 그 공간을 빈 공간으로 남겨 주어야 하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갑자기 허물어진 스카라 극장과 임권택 감독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머리 속을 맴돈다.
(김호연 ·문학박사 근대연극전공 ·도쿄대 객원연구원)
입력 2005.12.14. 20:31업데이트 2005.12.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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