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표지에도 소개된 남극 2874m 지하의 빙하코어. 지금으로부터 49만1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 연구팀은 그보다 더 아래인 3270m까지 시추해 65만년 전의 빙하코어를 찾아냈다. 사진제공 EPICA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면서 곳곳이 빙판이다. 한겨울 도시인들에게 얼음은 안 그래도 바쁜 출근길을 더 느리게 만드는 얄미운 존재지만, 어떤 과학자들은 이 얼음 속에서 지구의 역사를 찾는다.

극지방에 있는 빙하(氷河)는 오랫동안 내린 눈이 압축돼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빙하는 아래로 갈수록 나이가 더 많게 된다. 또 빙하에는 눈 속에 포함된 당시의 공기도 들어 있다. 과학자들이 빙하를 시추하는 것은 이러한 공기를 분석해 과거 지구의 대기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빙하를 시추해 얻은 원통 모양의 얼음기둥(빙하코어, ice core)은 과거의 지구를 알려주는 타임머신인 셈이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기록은 보스톡 빙하코어로 지금으로부터 44만년 전 지구 대기의 구성을 알려줬다.

최근 유럽의 과학자들이 이보다 무려 21만년이나 더 오래된 지구 대기의 기록을 찾아냈다. 유럽 남극 빙하시추프로젝트(EPICA)는 남극의 EPICA 돔(Dome) C라는 지역에서 65만년 전 내린 눈이 쌓여 만들어진 빙하코어를 시추했다. 연구팀은 이 빙하코어에서 65만년 전 지구의 대기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만든 공기방울을 찾아내 지난달 25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는 둘 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재 지구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 양은 65만년 전보다 무려 27%나 늘었다. 연구를 이끈 스위스 베른대의 토마스 스토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류가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지구온난화 가스의 대기중 농도를 급격히 증가시켰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39만년 전에서 65만년 전에 이르는 시기의 지구 온도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농도를 비교한 결과, 온실가스 농도 증가와 기온상승이 비례한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