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를 가나 온통 줄기세포와 배아복제와 관련된 소식뿐이다. 그러나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막연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누가, 또, 어떤 것이 옳은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럽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적어도 어떤 분야에서든지 생명을 다루고 논의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생명공학자들이 자신들의 놀라운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세계를 상대로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하는 우리나라 학자들은 말한다. 윤리 문제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든가, 1964년 제18차 세계의사협회 총회에서 채택된‘헬싱키선언’을 모르고 있었다고. 그들이 얻어낸 연구성과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스 요나스의‘기술 의학 윤리’은 아주 시의적절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이 책에 수록된 12편의 글들 가운데 제일 늦은 것이 1984년 발표되었으니, 요즘의 배아복제와 줄기 세포의 문제는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다.
그때는겨우 생명공학의 신기술이 거론되기 시작할 시기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기술 의학 윤리’는‘책임의 원칙’(1994년)과‘생명의 원리’(2001년)에 이어 우리말로는 세 번째로 소개되는 한스 요나스의 저서이다.
이 책은 윤리학적으로는‘책임의 원칙’에서 제시된 책임 윤리의 실천적 측면을 보여주며, 생명에 관한 논의로는‘생명의 원리’에서 보여주는 생명관이 인간생물학과 의술에 적용된 새로운 윤리적 측면을 다룬다. 윤리가 인간에 관한것이듯이,“ 윤리학의 뿌리는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윤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이제 인간의 윤리적 상황을 전통 윤리학으로는 논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이전보다도 훨씬 커다란 힘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적절하게 조절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윤리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책임의 원칙’에서 제시한‘생태학적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요나스의 생태학적 윤리는 20세기에 대두된 핵문제와 환경문제를 통해서 나타난‘책임 윤리’이다. 20세기의 문제가 인간의 능력으로 인간 주변의 환경이나 생태계를 위협했다면, 이제 21세기의 문제는 바로 인간자신을 스스로 위협한다는 것이다. 즉 배아복제에서 보듯이 생명공학 기술은 바로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생명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는 다시 공학자를 포함해서 인간에게 책임 윤리를 요청한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 윤리는 단순히 생명공학이 가져올 멋있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서라도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과 자본의 결합은 과학기술자들로 하여금 인간을 더이상 인간으로 보게 만들지 않는다.
과학기술자들의 순수성은 자본의'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훼손되고 조정 당하게 될 뿐이다. 한스 요나스의'기술 의학 윤리'는 지금의 우리 과학기술자와 생명공학자들에게 절실한 내용을 담고있다. 이제 이를 음미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박은진·경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