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드러머(drummer)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는 예일대 학생 시절부터 드럼을 쳐왔다. 그는 러시아 대사 시절에도, 지난번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도 이재민을 위한 자선 드럼 연주회를 열었고, 한국에 부임한 뒤 지난달 11일 한·미 협회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 우호의 밤’ 행사 때도 드럼 솜씨를 과시했다. 그는 지난 2일에는 서울 청담동에 있는 재즈바 ‘원스 인 어 블루 문’에서 본격적인 한판의 드럼 연주를 했다.
한상원 밴드, 러쉬 라이프 밴드와 호흡을 맞춰 펑키 블루스와 재즈곡들을 연주했다. 대사의 드럼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요즘 한창 인기 절정의 우리 록밴드 '럼블 피쉬'가 본 '버시바우 대사의 드럼 연주 수준'을 싣는다.
서울 압구정의 재즈바 원스 인 어 블루 문(once in a blue moon). 관객 중엔 외국인들도 많았고, 수많은 취재진들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평소에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한상원 선생님이 이끄는 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귀에 익숙한 노라 존스의 '돈 노 아이'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의 '세이빙 올 마이러브', 그리고 트레이시 채프먼의 '기브 미 어 리즌'… 블루스곡이 끝나자 갑자기 재즈 바 사장이 나오더니 대사(그냥 '대사'라고 하자)를 소개했다.
"대사님께서는 재즈드러머가 직업이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대사관 일을 합니다." 모두들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대사의 첫인상은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였다. 청소년 시절에는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예상했는데 말끔한 정장차림이어서 뜻밖이었다.
먼저 공연한 한상원밴드(기타·베이스·드럼·여보컬2·남보컬1·피아노1·키보디스트1)에서 드럼만 교체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첫 번째 곡은 셔플 스윙 리듬의 블루스. 첫 곡으로 이 사람의 드럼 실력을 판단할 수 없었지만, 우리 팀의 드러머 천휘는 "같은 드러머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좋은 연주는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좋은 연주다. 첫 곡에서 이 사람이 미국인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루브한 플레이와 릴랙스한 레이백 연주는 동양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연주 중간 중간 실수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중요치 않다. 전체적 흐름이 중요하다.
두 번째 곡은 펑키한 블루스곡. 첫 곡 때와는 달리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자만의 연주가 아니라, 다른 파트들과 눈으로 대화하면서 곡에서 나오는 섹션부분을 정확히 맞추면서 연주하는 모습이나, 싱글 스트로크의 강약이 프로 못지않았다.
세 번째는 슬로 록적인 스윙곡. 연주자로서 느린 템포의 곡 연주가 알맞은 강약조절과 정확한 템포 조절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느린 템포의 곡을 연주하려면 평소 많은 양의 테크닉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이 곡에서는 완벽한 연주를 한 건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연주에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리 드러머 천휘도 "이런 곡은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아니다"라고 했다.
네 번째는 기타연주로 시작한 빠른 펑키곡. 일단 모든 연주자들이 리듬을 타는 모습이 관중들을 흥겹게 만들었고, 중간 중간 기타와 드럼이 주고받는 솔로는 오랜 연습과 음악적인 이해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플레이였다.
다섯 번째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필굿'.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곡이라 그런지 호응이 무척 좋았다. 파워풀한 드럼에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했다. 다섯 곡이 끝나고 앙코르 곡으로 기타 블루스곡을 했는데, 모든 연주자들이 연주에 몰입했다. 기타 연주를 드럼이 잘 받쳐 주었다.
앙코르 곡이 끝나자 한 곡의 앙코르가 더 연주됐다. 마지막 앙코르 곡은 신나는 펑키 블루스. 재즈바 안은 어느새 하나가 됐다. 모두 다 음악에 심취했다. 마지막 앙코르 곡 중간 중간에 드럼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했는데 관객들은 크나큰 함성으로 보답했다. 마지막 곡은 대사의 드럼 연주의 절정. 솔로잉을 화려하게 보여주었다. 박수와 갈채가 이어졌다.
오늘 공연에 나온 대사에게서 순수하게 공연하는 음악인의 모습을 보았다. 뭘 바라지 않고 뭘 원하지도 않고… 그저 음악이 좋아서 공연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처음 음악할 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우리를 반성하게 만드는 좋은 공연이었다.
모든 이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공연이었다. 물론 오늘 공연에서 대사는 적지 않은 실수와 조금은 서툰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음악은 몇 번 틀리고 몇 번 잘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느낌과 감동을 전해주는 게 음악이다.
(럼블피쉬 베이스 김호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