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에는 '다 자빠트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질 지도 모르겠다.
'다 자빠트려'는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감독 황병국, 제작 튜브픽쳐스)의 '핵심 문장'으로, 주인공 만택이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말이다.
'다 자빠트려'는 '내일 만나요'라는 뜻의 우즈벡어인 '다 자쁘뜨러'를 만택이 '컨추리 스타일'로 막 발음한 것.
결혼을 하기 위해 이름조차 생소한 우즈베키스탄으로 '원정'을 떠난다는 설정, 한눈에도 촌티가 팍팍 나는 오리지널 농촌 노총각 둘이 가방을 질끈 동여매며 나름대로 결의에 찬 모습을 표현한 포스터 등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중들의 기호에 얄팍하게 영합한 그저 그런 코믹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즐거움 보다는 비애감이 남는다. 다만 칙칙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다. 바로 이 점이 '나의 결혼원정기'가 가진 매력이다.
서른여덟이 되도록 여자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쑥맥 노총각 만택(정재영)은 어머니를 볼 때 마다 죄인이 된 느낌이다. 만택의 죽마고우 희철(유준상)은 나름대로 여자 깨나 안다고 자부하지만 시골 노총각 설움은 마찬가지. 이들은 결국 마을에 시집 온 우즈베키스탄 색시를 본 만택 할아버지의 권유로 결혼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그 다음 내용은 별로 특별할 게 없다. 극 후반부에 만택의 통역인 라라(수애)를 통해 탈북자 문제도 살짝 다루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나 러브라인의 설정 등은 관객의 예측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뻔한' 소재에 '뻔한' 스토리다. 하지만 118분의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황병국 감독의 연출력이 더욱 돋보인다.
이번이 감독으로 첫 작품이지만, 황 감독은 화학조미료를 별로 쓰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맛을 지닌 음식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처럼 자연스런 극 전개에는 주역 배우들의 호연이 큰 몫을 했다.
'아는 여자' 등을 통해 '2004년 한국영화계 최고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정재영은 영화 속에서 정말 시골 노총각이 된 듯 하다. 실제로 만택이 된 것 처럼 때로는 바보처럼 순진하고, 때로는 술 마시고, 울고, 비애감을 토해낸다.
특히 극 후반 공항에서 라라를 찾아 '다 자빠트려'를 외치며 울부짖는 장면은 '왜 정재영인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초강력 아줌마 퍼머로 중무장한 유준상 역시 '제대로 망가지면서' 그들의 아픔을 극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애는 초반부에서 딱딱한 듯한 연기로 다소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코믹에서 멜로로 흐름이 변해가면서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 관객들의 눈물샘을 연신 자극했다.
영화가 너무 쉽게 다가오다 보니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코드에 대충 맞춘 영화 아니냐'는 폄훼의 여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말대로 '흥행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가 바로 '나의 결혼원정기'다. 다음달 23일 개봉예정.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