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개막축전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윤태웅군.

굴렁쇠를 굴렸던 일곱 살 소년이 배우가 된다.

88서울올림픽 개막축전에서 잠실 주경기장을 달리던 반바지 차림의 '굴렁쇠 소년' 윤태웅(24·경기대 체육과 휴학 중)씨. 그가 연극 '19 그리고 80'(연출 강영걸)에서 80세 할머니 모드(박정자)와 사랑에 빠지는 19세 청년 해롤드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연극을 제작하는 PMC 프로덕션(대표 송승환)은 3일 "지난달 26일 열린 공개 오디션〈본지 9월 29일자 A27면〉에서 윤씨가 50여 명의 지원자를 물리치고 남자 주인공 해롤드로 뽑혔다"고 밝혔다. 그의 연기 데뷔 무대가 될 '19 그리고 80'은 내년 1월 9일 서울 우림청담씨어터에서 개막한다.

"통보받고 어안이 벙벙했어요. 굴렁쇠를 굴릴 때도 쓰러뜨릴까 봐 지금처럼 조마조마했었는데. 하지만 저한텐 인생이 걸린 일입니다. '굴렁쇠 이미지 팔아서 연예인 됐구나' 같은 흉은 듣지 않을 겁니다."

제작사로부터 확정 통보를 받은 건 지난달 28일. 그러나 그는 며칠 동안 부모에게도 입을 다물었다. 집안에서 연예인 쪽은 꿈도 꾸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겸한 1박2일 경주 여행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은 윤씨는 3일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고 했다.

연극 '19 그리고 80'에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윤태웅씨

축구 선수를 꿈꿨던 태웅 소년은 2001년 말 해병대에 자원입대, 군기가 잔뜩 든 직각보행으로 국민 앞에 나타났었다. 그리고 지난달엔 17년간 지녔던 굴렁쇠를 국민체육진흥공단에 기증했다. ‘19 그리고 80’은 사는 데 싫증난 청년,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만남과 사랑을 따라가는 작품. 반년가량 따로 연기 지도를 받았다는 윤씨는 “해롤드가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삶을 발견하듯, ‘무거운’ 굴렁쇠를 내려놓았으니 힘차게 꿈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배우 인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 오디션을 열어 상대 역을 구한 박정자씨는 “윤씨의 풋풋한 청년 이미지가 눈에 쏙 들어왔다”며 “당장 부족한 연기는 다듬고 채울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