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무대. MBC 미니시리즈 '비밀남녀'에서 극중 아트센터 부원장으로 나오는 탤런트 김석훈씨가 큐레이터 역을 맡은 10여명의 엑스트라들에게 아트센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마침 연극 '블랙햄릿' 공연기간 중이어서 소극장 무대는 다채로운 무대장치들로 채워져 있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 변화에 힘입어 지역 공연장들이 문화의 중심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공연 관람이나 이벤트에서 벗어나 TV나 영화 등 각종 대중매체에도 자주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는 것.

충무아트홀은 지난 3월 개관 이후 비워져 있던 6층 공간을 아예 '비밀남녀' 드라마 제작진에 장기임대해줬고, 제작진은 이 공간을 김석훈씨의 사무실 세트로 꾸몄다. 통유리로 돼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충무아트홀의 로비도 단골 촬영공간이다. 이 드라마의 장소 섭외를 맡고 있는 안은남씨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소재가 드라마에 직접 등장하기 때문에 생생한 문화예술의 현장을 드라마에 담기 위해 충무아트홀을 촬영장소로 정했다"고 말했다.

충무아트홀 이장민 대리는 "아트홀과 함께 있는 스포츠센터에 운동하러 온 주민들이나 갤러리 관람객들이 드라마 촬영 현장에 관심을 가지는 등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현재도 2~3편의 영화들이 촬영장소 섭외를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광진문화예술회관 내 나루아트센터에서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가 촬영됐다. 나루아트센터 분장실에서 촬영된 부분은 극중 배우로 출연한 박정아씨가 분장하던 도중 검사의 방문을 받는 장면으로, 내부가 시원스레 펼쳐진 나루아트센터 분장실의 특성이 영화 섭외의 주이유가 됐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는 CF가 촬영됐다. 배우 윤석화씨가 출연한 'ING 생명' CF는 지난 3월 백암아트홀 무대에서 1인극 형식을 빌려 촬영됐다. 1인극 무대로 활용된 백암아트홀은 아름다운 내부디자인과 인테리어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2003년엔 송승헌씨와 손예진씨가 주연한 KBS 드라마 '여름향기'가 세종문화회관 야외계단을 무대로 촬영돼, 인근 직장인들과 시민들에게 명소(名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일본으로도 수출돼 세종문화회관 입장에서는 해외 홍보효과도 상당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주부 배계현(36·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지역공연장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손쉽게 문화적인 생활을 접할 수 있게 됐다"며 "TV나 영화에도 늘 카페나 술집만 나오는 것보다 공연장 등 문화공간이 나오는 게 훨씬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지역공연장들이 TV나 영화 촬영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충무아트홀 로비에서 촬영중인 MBC 드라마 '비밀남녀'의 현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