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험한 산세와 거친 해안가 절벽에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프랑스인들에게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지난 7월 말 코르시카의 북동쪽 도시 바스티아. 프랑스 남부 도시 툴롱을 떠난 대형 여객선이 이른 아침 바스티아 항구에 도착하자 가족 단위 관광객 수천명이 배에서 내렸다. 이부자리와 먹을 것을 잔뜩 실은 승용차와 캠핑카들이 항구를 빠져나가 섬 남쪽과 서쪽으로 좁고 꼬불꼬불한 국도를 따라 여행길에 오른다. 해안가에는 가는 곳마다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모래 사장에 누워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인구 26만명의 코르시카에 한 해 관광객은 약 200만명. 관광객들이 몰고온 차는 대부분 프랑스 번호판을 달고 있다. 10대에 1~2대꼴로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온 차량도 보인다. 코르시카는 와인·치즈·올리브유 등의 농업을 제외하면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

이 느긋하고 한가한 섬에 아픈 역사와 갈등의 흔적이 목격된다. 국도 표지판에는 프랑스어로 쓰여진 지명이 뭉개져 있다. 프랑스 정부에 대한 코르시카인들의 불만과 적대감을 소리없이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있는 섬 코르시카 해변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코르시카는 한 해에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여름 휴양지이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폭력시위와 테러로 프랑스 중앙정부와는긴장 관계에 있다.

코르시카는 18세기부터 프랑스 지배를 받으며, 지금은 행정구역상 프랑스 본토 22개주(R?gion)의 하나다. 공식 언어도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4000년의 긴 역사와 고유의 언어를 간직한 코르시카인들은 끊임없이 독립을 추구해왔다. 1970년대 중반 FLNC(코르시카국가해방전선)가 결성되면서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시한폭탄'으로 변했다. 지난 30년간 이곳은 폭력 시위와 폭탄 테러가 끊이질 않는 굴절된 땅이다. 일부 과격파들은 경찰서와 관공서를 공격하고, 여름이면 프랑스 본토 사람들이 소유한 별장을 골라서 불지른다. 최근에도 과격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산불이 발생했고, 이 불을 끄느라 동원된 소방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지난 1일 일어났다. 1998년 프랑스 정부가 임명한 코르시카 주지사 클로드 에리냑이 살해된 사건은 최악의 테러로 기록된다.

2003년 7월 프랑스 정부는 코르시카의 분리 운동과 테러를 잠재우기 위해 자치안을 마련하고 주민 투표를 실시했으나 51% 대 49%의 근소한 차이로 반대가 앞서 자치안이 부결됐다.

코르시카의 민족주의 감정은 프랑스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소외의식으로 깊어지는 양상이다. 주민 소득이 EU(유럽연합) 평균의 80% 수준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낮은 편이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코르시카의 불만을 달래려고 15년간 약 20억유로(약 2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특별지원책을 지난 2002년 뒤늦게 마련했지만 예산 부족과 느린 행정 때문에 제대로 실행이 안 되고 있다.

최근 런던의 두 차례 테러 이후, 코르시카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은 지난달 22일 코르시카섬을 방문해 "폭력을 행사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뜨거운 태양과 짙푸른 바다,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코르시카는 마치 폭풍의 눈에 들어선 것처럼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코르시카=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