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 장면. 당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천황의 위치가 국민이 뽑은 가이후 총리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며 이는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7세기 다이카(大化)개신 이후 일본인들에게 천황(天皇)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인간이 아닌 신, ‘아라히토카미(顯人神)’로 존재했다. 한데 1946년 태평양 전쟁이 막을 내리는 동시에 전범(戰犯)의 운명에 처한 이 ‘살아있는 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며 오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일본인들은 심각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침략의 피해자로서 천황을 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결코 날 것 그대로일 수 없다. 7일부터 3주간 방영하는 MBC 광복 6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5부작 ‘천황의 나라 일본’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본의 독특한 천황제를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한다.

일본을 들여다보는 여러 창(窓) 가운데 왜 하필 일본에서조차 민감한 천황 문제를 들고 나온 걸까. 2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환균 CP는 “천황을 이해하지 않고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김 CP는 “감상적인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일본인들의 내적 논리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에 호칭도 ‘일왕(日王)’이 아닌 ‘천황’을 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7일 밤 11시30분)는 히로히토 천황이 쓰러졌을 때 충격에 빠졌던 일본 사회와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에 대해 위헌 소송을 낸 ‘만세 소송’ 사건 등을 짚어본다. 2부 ‘사쿠라로 지다’(8일 밤 11시5분)에서는 2차 대전 당시 가미카제 대원들의 삶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펌프질했던 천황제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3부 ‘신을 만든 사람들’(8일 밤 12시)은 메이지 유신 세력들이 고도의 상징조작을 통해 ‘천황 만들기’를 시도한 과정을, 4부 ‘충성과 반역’(14일 밤 11시30분)은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언급하고 총격을 받았던 모토지마 히토시 전 나가사키 시장 사건 등을 다룬다. 마지막회 ‘제국의 유산’(21일 밤 11시30분)은 천황제 개헌을 둘러싼 움직임을 통해 천황제의 미래를 조망한다.

한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도쿄신문 나카무라 키요시 특파원은 “프로그램이 메이지 유신 전 일본인 99%가 천황을 몰랐다는 사실 등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사실을 드러낸 점이 놀랍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