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다이카(大化)개신 이후 일본인들에게 천황(天皇)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인간이 아닌 신, ‘아라히토카미(顯人神)’로 존재했다. 한데 1946년 태평양 전쟁이 막을 내리는 동시에 전범(戰犯)의 운명에 처한 이 ‘살아있는 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며 오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일본인들은 심각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침략의 피해자로서 천황을 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결코 날 것 그대로일 수 없다. 7일부터 3주간 방영하는 MBC 광복 6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5부작 ‘천황의 나라 일본’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본의 독특한 천황제를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한다.
일본을 들여다보는 여러 창(窓) 가운데 왜 하필 일본에서조차 민감한 천황 문제를 들고 나온 걸까. 2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환균 CP는 “천황을 이해하지 않고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김 CP는 “감상적인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일본인들의 내적 논리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에 호칭도 ‘일왕(日王)’이 아닌 ‘천황’을 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1부 ‘텐노, 살아있는 신화’(7일 밤 11시30분)는 히로히토 천황이 쓰러졌을 때 충격에 빠졌던 일본 사회와 아키히토 천황 즉위식에 대해 위헌 소송을 낸 ‘만세 소송’ 사건 등을 짚어본다. 2부 ‘사쿠라로 지다’(8일 밤 11시5분)에서는 2차 대전 당시 가미카제 대원들의 삶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펌프질했던 천황제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3부 ‘신을 만든 사람들’(8일 밤 12시)은 메이지 유신 세력들이 고도의 상징조작을 통해 ‘천황 만들기’를 시도한 과정을, 4부 ‘충성과 반역’(14일 밤 11시30분)은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언급하고 총격을 받았던 모토지마 히토시 전 나가사키 시장 사건 등을 다룬다. 마지막회 ‘제국의 유산’(21일 밤 11시30분)은 천황제 개헌을 둘러싼 움직임을 통해 천황제의 미래를 조망한다.
한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도쿄신문 나카무라 키요시 특파원은 “프로그램이 메이지 유신 전 일본인 99%가 천황을 몰랐다는 사실 등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사실을 드러낸 점이 놀랍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