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장비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세운상가 앞에 버젓이 놓여있는 안내판. 방향 표시를 따라 올라가보니 은밀하게 상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a href=mailto:cjkim@chosun.com><font color=#000000>/ 김창종기자</font><

지난달 29일 오후 1시쯤. 인터넷 도청 카페에서 찾아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도청 장비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자, "일단 나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화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을지로4가로 와서 다시 전화 주세요."

상점이 있다는 서울 세운상가 입구에 가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마중' 나와 있었다. 모두 짧게 깎은 머리에 몸에 딱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이었다. 기자의 좌우에 그들이 바짝 붙어 섰다. 가게 앞 창문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도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 중 한 명과 함께 상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출입문이 닫혔다. "아니, 왜 문을 닫죠?" "괜찮아. 여기선 다 이렇게 해요." 어깨가 떡 벌어진 나머지 두 명이 사무실 밖을 지켰다.

불과 1평 남짓한 사무실. 내부엔 책상과 소파, 텅 빈 장식장 하나가 전부였다. 도청 장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있는 표정이었다. "어디에 필요한 거죠. 목적만 얘기하세요. 집? 직장? 아니면 자동차 안? 우리가 적당한 걸 권해드릴 수 있지…."

"도청기는 손톱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휴대폰만 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요. 집의 소파든, 차 쿠션 밑이든 붙여 놓기만 하면 손님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니까."

"붙이는 건 좀 구식 아니냐"고 묻자, 상인은 빙그레 웃으며 "뭐든지 가능하니까 말씀만 하세요"라고 했다. 그는 "단순 유선 도청기는 50만원 정도지만 무선 도청기는 150만원, 휴대전화 도청 장비는 200만원은 줘야 된다"고 했다.

"휴대전화도 도청되느냐"며 놀라워하자, 그는 "휴대폰 번호와 주민번호를 가져오세요. 그럼 우리가 그 휴대폰 고유번호를 알아내서 쌍둥이폰을 만들어드릴 겁니다. 손님은 그 쌍둥이폰만 들고 다니시면 돼요. 통화내용이 실시간으로 다 들리니까…"라고 했다. 주의사항도 알려줬다. "절대 전화를 먼저 받으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도청 대상자가 먼저 받고 나서 받아야 됩니다. 혹시 숨소리라도 새나가면 상대방이 들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물건부터 보자고 하자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돈 갖고 오면, 그때 보여주겠다. 무조건 현금 거래다"라고 소리쳤다. 기자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그는 "파는 내가 걸려도 별로 처벌 안 받는데, 하물며 사는 사람이 뭔 걱정이냐"고 몰아세웠다.

도청 장비 판매가 시중에 성행하고 있다. 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매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고, 인터넷에는 도청기기 판매 광고가 활개치고 있다.

지역 정보 사이트 영○넷의 '사고팔고' 게시판에 가면, 여러 업체들이 '도청기 임대 및 구입' '전화·휴대폰 도청기, 실시간 위치 추적기 거래' 등의 메모와 함께 자신의 연락처를 올려 놓고 있다. 지난 6월 개설된 '○○○도청'이라는 한 인터넷카페에는 '도청가능한 (휴대폰) 복제, 가격은 60만원부터' '이메일 비밀번호 해킹 가능'이라는 문구를 올린 상인이 24시간 상담을 받고 있다.

도청기를 공개적으로 사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역포털사이트 청○○의 '사고 팔고' 게시판에는 이런 제품들을 팔겠다는 글 수는 3~4개지만, 사겠다는 글은 "핸드폰 도청과 일반 전화기 도청 가능한 제품 있나요. 가격 제시 좀 해 주세요…" 등 20개를 넘는다.

심지어는 아직 도청의 사회적 피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어린이들을 겨냥한 도청 기능의 장난감까지 유통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수입된 4.5cm × 3cm 크기의 소형 'S 도청기'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기의 볼륨을 조정하면, 바로 옆 방에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E 인터넷쇼핑몰에서는 이 제품이 어린이 완구로 분류돼 있고, 일부 완구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조의준기자 joyju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