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를 다녀왔다. 제주 하면, 관광과 휴양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번 제주행은 제주의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콘텐츠화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제주에서 새 화폐 인물로 밀고 있는 김만덕(1739~1812)이 바로 주인공이다.

18세기 한 양민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퇴기집에 몸을 의탁했는데, 용모와 재주가 빼어났는지 관기로 뽑혀 들어갔다. 스무 살에 스스로 관기생활을 청산한 뒤, 포구 근처에 객점을 차리고 해상 유통업에 뛰어들어 거상(巨商)이 됐다. 정조 16년(1793년) 이래 제주에 큰 기근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그녀는 여태까지 모았던 재산을 내놓아 수천의 목숨을 구하였다.

이런 의로운 행동을 어찌 임금인들 몰랐을까. 정조는 그녀의 소원을 물어 역마를 타고 한양에 올라와 왕과 왕비를 만나보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구경토록 해주었다. 그로부터 만덕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일세(一世)의 화제를 모았다.

정창권 고려대 국문과 초빙교수

김만덕은 요즘처럼 빈익빈 부익부, 곧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에 더욱 부각될 만한 인물이다.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부자의 도덕과 함께 사는 세상의 소중함을 실천한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캐릭터(성격)도 뚜렷하고 스토리(행적)도 드라마틱하다. 만화나 게임 등 문화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제주, 아니 한국의 중요한 역사 콘텐츠 자원인 김만덕을 이처럼 홀대해도 좋을까.

(정창권·고려대 국문과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