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진 간’이라는 뜻의 불어인 ‘푸아그라’(foie gras)는 혀에서 녹아내릴 만큼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이 짙다. 미식가들은 “거위간이 오리간보다 결이 곱고 맛이 섬세하다”며 윗급으로 친다. 프랑스의 대표적 별미지만, 로마인들도 즐겨 먹었다. 1세기 로마의 미식가 가비우스 아피시우스가 쓴 요리책에 푸아그라 요리법이 기록돼 있다. 로마인들은 무화과를 먹여 거위를 살찌웠다. ‘푸아’(foie)라는 단어도 ‘무화과로 채운 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에주르 피카툼’(ejur ficatum)에서 유래했다.
철갑상어알, 송로버섯과 더불어 세계 3대 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
푸아그라는 흔히 우리나라에서 '거위 간'이라고 불렸으나 이제 개명할 시점이 된 것 같다. INLA(프랑스 국립농학연구소)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푸아그라 중 '거위 간'은 10%에 불과하고 오리 간이 9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Perigord) 지역에 있는 '튀르낙 농장'(Ferme de Turnac)의 농장주는 "거위는 300g의 사료를 하루에 세 번씩 한 달간 먹여야 하는 반면 오리는 하루 두 번 2주 동안만 먹이면 되기 때문에 오리가 선호된다"고 했다. 사육기간도 거위는 6개월이지만, 오리는 5개월로 더 짧다.
식자재 수입업체 'Gourmet F&B' 서재용 상무는 "푸아그라는 1998년 무렵부터 우리나라에 본격 수입됐는데 오리 간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오리 간은 호텔 납품가 6만1000~6만5000원(450~600g)으로 거위 간보다 1만원 가량 저렴하다"고 말했다. 푸아그라 국내 연간 소비량은 4.5t으로 프랑스의 1만6000t에 비하면 '새발의 피'.
거위나 오리에게 옥수수 사료를 반복해서 먹이며 사육하면 간이 정상보다 10배 가량 커져 거위 간은 700~900g, 오리 간은 400~600g이 나간다. 이렇게 사료를 반복해서 먹이는 과정을 '가바주(gavage)'라고 하고, 이렇게 얻은 간이 바로 푸아그라다.
튀르낙 농장에서 확인한 '가바주' 과정은 이렇다. 우선 농장주인이 거위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틀에 넣고 고정시켰다. 이어 그는 손으로 거위의 목을 잡더니 부리에 깔때기 끝을 밀어넣었다. 농장주인이 깔때기에 달린 손잡이를 회전시키자, 깔때기 안에 있던 옥수수 알갱이가 거위의 목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는 거위가 옥수수를 잘 삼키도록 이따금씩 거위의 목을 손으로 훑어내렸다. 농장주인은 "이 수동 기계는 60년대에 쓰던 것"이라며 요즘 푸아그라 농장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전기식 기계를 사용하면 시간당 50~60마리를 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애호가들은 사료를 반복해서 먹이는 가바주 과정이 동물학대라고 주장하지만, 음식 전문가들이나 푸아그라 생산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전문 음식작가 실비아 가베씨는 "본래 철새였던 거위와 오리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지방의 형태로 간에 축적한다"고 말했다.
INLA는 거위나 오리가 가바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사람 손에 붙들리는 스트레스보다 오히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까지 발표했다. 또 가바주에 앞서 거위와 오리가 14주간 방목돼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다"고 했다.
(페리고(프랑스)=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