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의 냉풍(熱河的冷風)'이라는 원제가 좀더 드라마틱하다. 여기서 '열하'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그 열하다.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 청더(承德)인 열하에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3대의 성세(盛世)를 거치며 90년에 걸쳐 거대한 '피서 산장'이 들어서게 된다. 중국 각지의 산수를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이 산장은 전체 면적 564만㎡, 담장 길이 10㎞에 이르는 거대한 궁원(宮苑)이다. 이곳의 극히 일부인 '원근천성'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북쪽에선 샘물이 솟구치고 서쪽 폭포는 은하수마냥 맑은 물을 토한다. 수정으로 엮은 주렴이 낭떠러지에 아롱이는데 앞뒤 연못엔 흰 연꽃 만발하고 꽃향기와 물소리 어울리니 승경이 따로 없어라."

저자 중 한 명인 웨난(岳南)은 '마왕퇴의 귀부인' '구룡배의 전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역사를 마치 소설처럼 풀어 쓰면서도 경박함으로 흐르지 않는 몇 안 되는 중국 작가 중 한 명이다. 열하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대제국을 만들었던 청나라 황제들이 머물며 정무를 보고 외국 사절들을 접대했으며 숱한 황자들이 황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암투극을 연출하던 곳. '열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 속에 청나라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담겨 있는 셈이다. 건륭제의 출생 비밀을 둘러싼 전설 중 하나인 '초가집의 수수께끼'도 이곳이 무대였다. 영국 사절 매카트니가 '삼궤구고'의 치욕을 겪은 곳도, 제정 러시아의 압제를 이기지 못해 볼가 강 유역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청나라로 이주한 토이호특 사람들이 위로받은 곳도 바로 열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곳은 '제국 몰락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저자는 "가경제가 이곳에서 죽은 뒤 사람들이나 짐승들 모두 흩어지고 열하의 상공에는 불길한 찬바람만 감돌아 산장의 대문도 쇠락하는 왕조를 따라 영원히 닫히고 말았다"고 서술한다. 2차 아편전쟁으로 베이징이 함락되자, 함풍제는 이곳으로 피란을 떠났고 곧 세상을 떴다. 이후 서태후가 이화원 건설에 몰두하자, 열하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다. '마왕퇴'에서 볼 수 있었던 밀도와 박진감은 상당히 떨어지고 구성도 산만하지만, 지나친 자만과 선민의식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가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