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감독, 주연 배우 엄정화, 문성근

저만치서 엄정화가 걸어온다. 14일 서울 대치동 휘문고 주변 영화 ‘오로라 공주’ 촬영 현장. 모퉁이를 돌아선 그녀가 자동차 매장 앞에 서 있는 문성근을 보고 얼어붙은 듯 걸음을 멈춘 순간, “컷” 소리와 함께 챙 넓은 모자를 쓴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두 사람의 시선을 끊고 다가간다. 방은진 감독이다.

‘오로라 공주’는 ‘301 302’ ‘태백산맥’의 연기파 배우 방은진이 감독 데뷔를 선언한 첫 장편영화다. 배우가, 그것도 여배우가 장편 극영화의 연출을 맡은 것은 충무로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오로라 공주’는 제목이 주는 귀여운 느낌과는 달리 끔찍한 연쇄살인극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 문성근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역을, 엄정화가 용의자인 자동차 딜러 역을 맡았다. 제목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단서가 ‘오로라 공주’ 스티커인 데서 착안해 붙인 것.

"직접 연출을 해 보니 내가 그동안 어떻게 카메라 앞에 섰나 싶을 정도로 배우들이 대단해 보여요. 특히 '오로라 공주'는 '분노'가 잘 살아 있는 영화가 될 겁니다."
시종 '분노'의 정서를 강조하는 방 감독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선 더이상 '배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기자 출신이라는 점은 연출에 도움이 될까, 장애가 될까. 방은진 감독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아니까 '저 사람이 저 지점만 넘으면 되는데' 싶어 몰아붙이게 돼요. 반면 내가 연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 저건 안 될 거야' 하고 쉽게 타협하는 면도 있지요."

‘질투는 나의 힘’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중견배우 문성근은 “배우 출신 감독과 작업하니까 무섭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 기존과 다른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 줄 예정인 엄정화는 “제목이 ‘오로라 공주’이고 내가 주연한다니까 코믹할 거라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알고 보면 나도 연쇄살인범 역에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현재 70% 정도 촬영이 완료된 ‘오로라 공주’는 오는 10월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