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밴크로프트

"버번?" 침대에 다리를 얹고 스타킹을 벗던 '로빈슨 부인'은 딸의 애인 벤저민에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이후 수많은 미국 청년들은 더스틴 호프먼을 꿈꾸며 버번을 들이켰다. 1967년 영화 '졸업'(The Graduate·감독 마이클 니콜스)에서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스스로 파괴하는 도발적인 여성, '미세스 로빈슨'으로 출연했던 미국 여배우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73)가 6일(현지시각)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자궁암으로 사망했다.

1931년 뉴욕에서 이탈리아 이주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연기학교 졸업 후 58년 '시소 타는 두 사람'(Two for the Seesaw)에서 헨리 폰다의 상대역을 맡으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서 펜 감독의 '사랑은 기적과 함께'(Miracle Worker·1962)에 헬렌 켈러의 스승인 설리번 선생 역으로 출연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동명의 뮤지컬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이후 '펌프킨 이터' '졸업' '터닝 포인트' '신의 아그네스' 등으로 4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생전의 그녀는 "졸업 이후로 많은 작업을 했으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졸업'뿐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졸업’에 출연한‘미세스 로빈슨’앤 밴크로프트(왼쪽)와‘벤저민’역의 더스틴 호프먼.

1964년 코미디영화의 거장, 멜 브룩스 감독과 재혼한 그녀는 남편이 연출한 ‘무성영화’(Silent Movie)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2001년 시고니 위버 주연의 ‘하트 브레이커스’에 출연해 여전히 도도한 매력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