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4월 20일, 전남 광주시 무등산 중턱 증심사 계곡 덕산골에서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던 철거 반원 4명이 한 청년에게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채 살해 당했다. 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저지른 청년은 박흥숙(당시 21세). 중학교 진학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도시 빈민이었다. 청년은 1980년 12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제작 백상시네마)의 소재가 된 박흥숙 사건이 15일 MBC TV ‘이제는 말할 수 있다’(밤 11시30분)를 통해 미리 조명된다. 먼지 뽀얗게 쌓인 이 사건을 왜 지금에 와서 다시 끄집어내는 것일까. 제작진은 “당시 사건의 핵심은 도시 빈민 문제였는데 잔혹한 엽기성만 부각돼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며 “사건을 재조명함으로써 1970년대 개발 독재 과정에서 아무런 생계 대책도 없이 이뤄졌던 강제 철거 정책의 실상을 살펴보고 국가의 책임 방기를 파헤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박흥숙이 행정 집행 과정 속에서 희대의 살인마로 변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철거 작업을 하다 변을 당한 철거 반원들의 이야기와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살아온 유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사건을 무마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던 당시 행정 책임자들의 무책임함을 폭로한다.
프로그램을 통해 박흥숙의 자필 최후 진술서가 28년 만에 공개되고 여동생 박정자씨와의 인터뷰도 방송된다. 생존한 철거반원 김 모씨가 공권력의 개입 과정을 들려주고, 당시 사건을 목격하고 법정 증인을 섰던 오 모씨도 출연한다.
한편 영화 개봉을 앞두고 영화 띄우기를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김환균 책임프로듀서(CP)는 “2000년부터 도시 빈민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박흥숙 사건을 기획했지만, 살인마를 소재로 한다는 점과 가족들과의 접촉이 어려워 접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경 가족들과 연락이 닿아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간 것”이라며 “영화사와 사전에 협의된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