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제복을 입은 도어맨이 차 문을 열어주며 머리를 숙였다. 태국 방콕 수컴빗가(街)의 범릉랏 병원. 특급호텔처럼 깨끗하고 품위 있는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성형외과 병동에서 만난 스위스인 리히터(60·국제금융업)씨 부부는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에 다시 태국에 와서 얼굴 주름 제거 수술을 받겠다며 예약을 하고 있었다.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그을린 그는 “한달 전 푸껫에 와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치과 치료를 받았는데, 결과가 아주 만족스러워 성형수술까지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치료받는 비용이면 태국에선 골프도 치고, 바닷가에서 휴양도 할 수 있다”며 “태국 의료관광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차로 15분쯤 떨어진 펫부리가(街) 방콕병원 로비에서 만난 미국 와이오밍주 출신의 숀 리즈(48·건축업)씨는 3주 전 방콕 병원서 내시경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다. 3∼4년 전부터 관절염이 생겼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친구가 방콕행을 권유한 것.
리즈씨는 왕복 비행기 값, 수술비용, 파타야 해변 1주일을 포함한 3주간의 체재비용이 모두 합쳐 5000달러밖에 들지 않았다며 싱글벙글했다. 미국에선 수술비만 6500달러란다. 그는 "출국에 앞서 오늘 마지막 검진을 마쳤는데 의료진도 무척 친절하고 시설이나 의료 수준이 흠잡을 데가 없었다"며 "다음에 엉덩이 관절 수술도 여기서 받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환자들이 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중국 등 주변 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동, 유럽, 미국, 심지어 아프리카에서까지 태국 병원을 찾아온다.
범릉랏병원, 방콕병원, 방콕너싱홈병원, 라마9병원, 사미티벳병원 등 방콕 소재 10여개의 주요 사립종합병원과 작수-루트닌병원 같은 안과전문병원, 치과병원에도 외국인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방콕병원 등은 파타야, 푸껫 등 태국 내 총 14군데 병원과 네트워킹을 형성해서 열대 휴양지를 찾는 외국인에게까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 진료가 가능한 태국의 사립병원은 150여개 정도다.
외국인들이 의료 선진국도 아닌 태국에서 치료를 받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진료를 '즉시' 받을 수 있기 때문. 태국에선 선진국의 25∼50% 수준에 불과한 의료비로 해외 유학을 마치고 온 우수한 의료진의 진료를 병원에 가는 즉시 받을 수 있다.
아침에 건강검진을 받고 오후에 시내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 검진 결과를 볼 수 있는 패키지 프로그램, 각종 성형수술과 피부미용시술, 라식수술, 치과진료 등이 특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관절수술, 심장수술, 불임치료 등 보다 중한 질병의 치료를 받기 위해 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도 늘고 있다.
범릉랏병원 마케팅을 총괄하는 루벤 토랄씨는 "태국은 열대 해변 휴양지, 북부 산악 휴양지, 불교 문화유산 등의 관광자원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 항공 교통의 중심지여서 자연스레 '세계 의료 관광의 메카'로 떠 올랐다"며 "지난해 범릉랏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50여개국 30만여명으로 병원 총 매출 1500억원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방콕병원의 경우도 외국인 환자 매출이 2000년 12억원에서 2004년 200억원으로 20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사미티벳병원 경영 부책임자 피터 린드너씨는 “현재 외국인 환자 비율은 15%선이지만 1∼2년 이내에 50%를 넘어설 것”이라며 “폭증하는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인터내셔널 병동’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사립병원협회가 추산한 지난해 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00만명. 이들로부터 총 300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앞으로도 5년간은 15~20%의 급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