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5시40분 인천항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여 거리인 대청도의 선진포항. 꽃게잡이 어선들이 차례로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이광진(53) 선장과 선원 셋, 그리고 기자 2명을 태운 신성호(7.93t)도 닻을 올렸다.
"오늘이 다섯물이니까 꽃게가 나올 때도 됐는데…."
이 선장의 혼잣말이다. '(다섯)물'은 물살의 세기가 바뀌는 데 따라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음력 초여드레와 스무사흘) 때부터 사리(조수가 가장 높은 음력 보름과 그믐날) 때까지를 날짜별로 나눠놓고 부르는 어민들 용어.
배가 파도에 따라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떠오르길 거듭한 지 1시간20여분 만에 배는 멈췄다. 북위 37도39분067초, 동경 124도43분590초. 백령·대청·소청도 어민들만 작업 허가를 받은 '특정해역' 중 'B어장'이다. 선원들은 하루 전 이곳에 그물을 쳐놓았었다.
"우선 (그물) 한 틀 더 내리자고."
이 선장의 말에 선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굵은 동아줄이 풀려나오자 선원들이 방향을 잡아가며 그 줄을 바다로 내려보냈다. 이어 농구공보다 훨씬 더 큰 플라스틱 통 20여개씩을 한데 묶은 부표(浮漂)가 바다로 떨어지고, 마침내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그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물 한 틀은 길이가 350m, 너비가 50m 정도.
선원 양재율(45)씨가 이 선장에게 "이제 물보자"고 했다. '그물에 걸린 것을 거둬들이자'라는 말이었다. 전날 친 그물의 한 끝을 잡아 뱃전에 있던 줄과 묶어 모터를 돌리자 물 속에 있던 그물이 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20여분간 건져올린 첫 번째 그물에는 꽃게보다 병어새끼 같은 잡어가 더 많았다. 게는 암게 6마리와 수게 3마리 등 모두 9마리.
"작년에도 이랬어요. 안 잡혀."
배 탄 지 30년이 된다는 선원 김재선(47)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서는 선원들이 한 달에 30만원도 못 벌어요. 기름값과 그물, 밥값 대는 선주는 한 달에 300만원쯤 적자 보고. 5년 전만 해도 1년에 2000만~3000만원은 벌었는데…."
부표를 찾아 어장 안을 돌아다니며 4시간여 만에 '물보기'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양씨가 손가락으로 멀리 희미한 땅을 가리켰다.
"저기가 이북이오. 중국배들은 꽃게가 수온에 따라 이쪽으로 내려오기도 전에 북쪽에서 싹쓸이를 하니 여기선 잡을 게 없지. 밤이면 아주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우릴 놀리는 것처럼 작업한다니까."
2년 전부터 꽃게철(4월 중순~5월 말, 9~10월)이 되면 수시로 100~300여척이 떼를 지어 NLL(북방한계선)을 넘나들며 우리 어선은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서 꽃게를 쓸어간다고 했다. 이로 인해 우리 서해안 꽃게 어획량은 2002년까지 연간 1만t을 훌쩍 넘기다가 지난해에는 2597t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 어장 끝에서 NLL까지가 3.8마일인데 어장을 1마일만 더 늘려달래도 안 들어주는 거예요. "
낮 12시쯤 물보기가 끝났다. 가로 60㎝ 세로 40㎝ 높이 30㎝쯤 되는 플라스틱 상자로 암게는 반 상자, 수게는 바닥을 겨우 가린 정도.
"20㎏쯤 되겠네. 3년 전만 해도 하루에 48상자까지 채웠는데."
답답한 듯 이 선장이 "돌아가자"며 시동을 걸었다. 1㎏(3마리)에 대략 3만~3만7000원인 도매가로 치면 이번 출어로 번 돈은 70만원선. 각종 비용(기름값과 인건비 각 20만원, 식대 10만원, 그물수선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것.
선진포항에 돌아와 선원 이영복(43)씨에게 "이제부터는 쉬느냐"고 묻자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가서 해질 때까지 그물 수리 해야죠. 꽃게철에 한 틀이라도 더 빨리 (바다에) 넣어야 할 것 아니요. 내일 새벽에 또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