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러시아 철학자야, 독일 철학자야.” “왜 이곳에 칸트 무덤이 있는거지.”

지난 19일 러시아 역외(域外) 영토이자 발트해(海) 연안에 위치한 칼리닌그라드시(독일명 쾨니히스베르그) 대성당.

이곳에 안장된 임마뉴엘 칸트(1724~1804) 묘지 앞에서 수학여행을 온 러시아 고등학생 사이에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지도 교사 블라디미르(42)씨의 칼리닌그라드 역사와 칸트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닌그라드는 세계인은 물론 러시아인들까지도 혼돈할만큼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는 14세기에 한자동맹에 가입하는 등 무역으로 번창했으며, 2차대전 이전까지 쾨니히스베르그로 불렸다. 그러나 전쟁 당시 소련군이 강제 점령하면서 러시아땅이 됐다. 옛 시가지 90%이상이 파괴돼 새롭게 건설됐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순수·실천 이성 비판 철학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가 14세기 건축된 이곳 대성당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궁금한 사항이다. 칸트는 이곳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수를 지내면서 칼리닌그라드 밖을 한번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독일인으로 태어나 독일땅에 묻힌지 150년만에 땅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공교롭게도 러시아땅에 잠들고 있는 셈이다. 칸트가 잠들어 있는 성당은 칸트 생존 당시 루터파 교회였지만 지금은 러시아 정교 성당으로 변했다.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은 요즘 조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인접국에 둘러싸인 채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인접국 모두 유럽연합(EU)에 가입해 있고 러시아보다 더 지리적으로 가깝기때문이다.

더구나 옛소련국이었던 리투아니아가 91년 독립히면서 육상 이동 통로가 막히면서 모든 게 불편해졌다. 소련시절 한나라로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리투아니아가 독립 이후 반(反)러시아 정책을 펼치면서 칼리닌그라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리투아니아를 통해 본국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고 통과해야 하는 기막힌 경우에 처했다. 소련시절 비자 면제국이었던 폴란드마저 자국 입국하는 러시아인에 비자를 요청하는 바람에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04년 5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두나라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센겐조약(EU회원국간 무비자 통행, 비회원국에는 엄격한 비자 발급 규정)을 적용함에 따라 이 나라들을 비자없이 통과하던 전례가 사라져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반대로 독일인들은 자국 철학자 칸트 유적지를 보기 위해 러시아로 가야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독일은 자국땅이었던 칼리닌그라드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내놓고 내땅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않지만 독일은 폴란드, 스웨덴 기업과 더불어 칼리닌그라드 경제 전분야에 진출해 있다. 이들 국가 기업들은 합작형태로 경공업 분야 8%, 수송 분야 12%, 식료품 분야 6%를 장악하며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곳은 상당부분이 독일 영향력하에 놓여있다.

칼리닌그라드는 면적 1만5100㎦에 러시아인 90만명이 살고 있다. 전세계 호박(보석의 일종) 생산량 90%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특구로 지정 외국인 기업 투자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또 이곳에 발틱함대 등 나토를 상대하는 최전방 군전략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러시아)=정병선특파원 bschung@chosun.com)

사진도 2장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