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을 그리는 데 납을 사용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제작기법이 일본의 고분벽화에 강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기 5세기 고구려 쌍영총(雙楹塚) 벽화 조각에서 흰색 납 안료인 연백(鉛白·염기성 탄산납)을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안료는 벽화를 채색할 때 밑바탕으로 사용한 것이다.

유혜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 박사는 "벽화 조각을 분석하던 중 그림이 그려진 부분에서만 납이 검출됐고 주변 여백에선 검출되지 않았다"며 "색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이 안료를 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구려 쌍영총 벽화(왼쪽)와 일본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서 연백이 확인된 부분(화살표)

고구려 고분벽화는 보통 벽면에 석회를 바른 뒤 그림을 그리거나(프레스코기법) 돌로 된 벽에 바로 그림을 그렸는데, 쌍영총은 석회를 바른 다음 윤곽선을 그리고 그 윤곽 안에 연백을 바른 뒤 그림을 그렸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연백을 바른 기법은 1972년 발견된 일본 나라현의 다카마쓰(高松) 고분벽화(서기 7~8세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유 박사는 "다카마쓰 고분은 발견 당시부터 무덤에 그려진 인물들의 복장 등에서 고구려·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연백을 바르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제작기법이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쌍영총은 평남 용강군에 있는 고구려 고분. 큰 기둥(楹·영) 두 개(雙·쌍)가 무덤에 있어서 쌍영총이라 한다. 이 벽화 조각은 일본인들이 1910년대에 떼어내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