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부인이면 골프나 치러 다닐 것이지 중뿔나게 웬 가수?"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니가 부럽다. 니가 무대에 오른다니 나도 꾹꾹 눌러두었던 꿈이 생각났어."

주부 이승희(48)씨가 요즘 친구들에게 듣는 말은 이렇게 진폭이 심하다. 젊은날 품었던 가수의 꿈을 끝내 접지 못하고 1999년 중년의 나이에 자작곡 CD를 냈던 이 '아줌마'는 이번엔 자신의 가수 데뷔 과정을 담은 콘서트 드라마 '그녀, 노래하다'(연출 김효선)로 관객을 만난다. 그는 끝내 꿈을 이뤄낸 이야기를 자서전('도전하는 여자가 섹시하다')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중년 주부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른 방법으로 나누고 싶어 공연을 준비했어요. 가수 타이틀은 얻었지만 매니저도 기획사도 없는 '무명'이다 보니 대중을 만날 길이 가로막혀 속앓이만 했습니다. 이렇게 늙기는 싫고, 원없이 노래하고 또 관객의 반응도 확인하고 싶어 마음 먹었죠."

1978년 숙명여대 교내 팝송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이씨는 의사와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10년을 흘려보냈다. 밀쳐 두고 잊어버렸던 가수의 꿈을 다시 꺼내든 건 어느 백화점의 노랫말 공모전에 '아버지'로 입선한 90년. 이씨는 음악학원에 등록, 오선지에 콩나물 그려넣는 법부터 배웠다. "86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재능이 노래였어요. 아버질 다시 만나려면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7년을 함께 산 아내의 가수 선언에 남편은 어안이 벙벙했다. 물질적 도움을 거절당한 이씨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정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드디어 99년, 11곡의 노래를 묶어 음반을 냈다. 비교적 인기있는 곡은 '슬퍼하지 마'. 중년 남성들이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애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기와 노래가 포개진 이번 공연에서 그는 직접 작사·작곡한 '중년은 아름다워'를 비롯해 '슬퍼하지마' '사랑밖에 난 몰라'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 등 6곡을 부른다.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이씨는 "오전에 생선을 해동해 놓고 왔는데 얼른 들어가 남편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며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여전히 주부였다. 이씨는 "중년이란 지혜도 고이고 시행착오도 적은 인생의 황금기 아니냐"고 했다. 78년 팝송대회 최우수상을 받을 때 불렀던 노래는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였다. 그의 삶을 밝혀준 이는 남편도 세상도 아니고 '이승희' 자신이었다. 공연은 26일부터 5월 1일까지 서울 학전블루. (02)766-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