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이 개봉 52일 만에 관객 5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아마도 드라마틱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와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서 공감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웃음과 울음을 절묘하게 비벼 놓아서 웃다가 울고 싶어지고 울음을 삼키다 웃게 된다.
'말아톤'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이른바 자폐증) 초원이에 관한 영화다. 엄마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초원이에게 열과 성을 쏟는다. 그리고 의지와 체력과 인내와 절제가 모두 필요한 인간 한계의 도전, 마라톤을 하게 한다. 그것은 엄마의 마라톤이기도 했다.
초원이는 해냈다. 성공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엄마의 지극한 관심과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달리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초원이 몸매는?" "끝내줘요." 엄마는 물으면서 초원이에게 최면을 걸고, 초원이의 답을 들으면서 스스로에게도 최면을 걸었으리라. 엄마는 초원이의 작은 가능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성은 싹을 틔우고 푸른 나무가 되어 해와 바람과 비를 누릴 수 있었다.
초원이에게 달리는 행위는 소통행위이며, 학습행위이고, 자아 발견의 행위이며, 자기결정의 행위였다. 달리기를 통해서 홀로 설 수 있었고 한 발 한 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자기 결정력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원이는 운동장 100바퀴를 돈 후 코치의 손을 자기 가슴에 대며 말한다. "초원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그 생생한 느낌은 초원이의 '자아'를 깨운다. 초원이는 달린다. 풀, 꽃, 바람, 하늘, 얼룩말, 사람들…. 달리면서 느낀다. 세상과 만나며 세상과 화해한다. 그것은 아름답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언제나 자기 것만 챙겨 먹던 초원이가 목말라 하는 코치에게 물을 건네게 된다. 인간관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코치도 초원이를 장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느끼게 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분리되어 교육을 받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맥락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익혀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애는 병이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반사람과 다르지 않다"(코치가 초원이 엄마에게 하는 말).
초원이 엄마의 '관심과 믿음'은 장애인을 대하면서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가치이다. 자칫 장애인은 열등하거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들도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자립할 수 있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세금을 낼 수 있고, 민주시민의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수도 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하나 더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장애인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다. 중증 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경우 심리적·경제적·시간적 부담이 매우 커서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부모는 장애 자녀에 대한 염려로 자녀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은 게 소망이라는 가슴 아픈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영화 마지막, 카메라 앞에서 초원이가 짓던 환한 미소가 '말아톤 그 이후'에도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잔잔하지만 웅숭깊은 파문으로 남아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열리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작가가 장애인과 그 가족을 이해하고 그들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기울였을, 땀 흥건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김용욱 국립특수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