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지리멸렬하다. ‘가능한 변화들’은 그 지리멸렬한 삶에 대해 분노하지만, 뾰족한 수 없이 무기력한 30대 중반의 남성에 관한 보고서다. 소통을 원하지만 응답은 없고, 변화를 갈망하지만 삶의 절벽 앞에서 한계를 느끼는 현대인의 발버둥이다.
영화는 오랜 친구인 두 남자를 병렬 혹은 대치시키며 러닝타임을 둘로 나눈다. 유부남 문호(정찬)는 지극히 순종적인 아내, 귀여운 딸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을 쓰겠다며 직장을 때려치운다. 그리고 총각 행세를 하며 남몰래 '여자 사냥'을 시작한다. 한쪽 다리를 저는 노총각 종규(김유석)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눈에 띄는 모든 여자에게 수작을 걸지만, 사실 그가 잊지 못하는 것은 이미 결혼해 버린 첫사랑이다. 종규는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남몰래 절규하지만, 겉으로는 당당하다.
'가능한 변화들'은 장점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캐릭터와 대사가 보여주는 삶의 단면에 대한 성찰은 어쩌면 이 영화가 활자 텍스트였을 때 훨씬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아파서 쓰러졌을 때는 죽는 게 무서웠거든. 그런데 이제 보니까 사는 게 더 무서워"라는 종규의 절규나, 삼겹살집에서 "죽은 살이 타는 건데, 냄새가 달콤해요"라는 문호의 대사는 그 자체로 삶과 죽음, 그리고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인생의 의미들을 더듬는다. 하지만 영화는 일반 대중과의 보다 광범위한 접속을 노린 탓인지, 필요 이상이라고 여겨질 만큼의 섹스를 스크린에 삽입한다. 라면집에서 처음 만난 여자를 여관방으로 데리고 가 스리섬(Threesome)에 이르거나, 채팅을 통해 만난 여성과의 하룻밤 사랑에서 "임신해"라고 부르짖는 문호, 그리고 첫사랑 유부녀와 다시 섹스하는 종규까지, 영화는 쉬지 않고 이들의 몸을 벗긴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해석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 몸부림의 이미지는 대부분 공허하고, 공감의 울림을 찾기는 쉽지 않다.
2004년 4월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 200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던 민병국 감독이 자신의 당선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한 작품. 18일 개봉.
(어수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