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세계 수학사(數學史)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나면,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IT분야에서 인도인이 벌이는 맹활약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의 종주국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원래 인도에서 만들어져 아라비아로 전파된 것이다. 인도인이 창안한 아라비아 숫자에는 '위치적 기수법'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456을 로마숫자로 적는다면 100을 나타내는 C를 네 번, 50에 해당하는 L을 한 번 적고, 6을 나타내기 위해 V와 I를 배열한 CCCCLVI가 된다. 숫자를 적기도 불편하거니와 계산하기는 더욱 번거롭다. 그에 반해 아라비아 숫자 456은 100을 4번 적지 않아도 100의 자리에 4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400임을 알게 되는 표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표기가 가능하려면 자리 값이 비어 있음을 나타내는 0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560과 4506을 구분하기 어렵다. 영(零)은 산스크리트어로 수냐(sunya)라고 하는데, 대승불교에서 공(空)을 뜻한다. 인도 이전의 마야 문명에서도 0을 나타내는 시도를 했지만, 인도는 0을 본격적인 수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수의 단위에서도 인도의 영향력을 읽을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일을 뜻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는 10을 64번 곱한 1064을 말한다. 너무 큰 수이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언어적 의미와 수학적 의미가 연결된다. 10을 52번 곱한 1052을 '항하사(恒河沙)'라고 하는데, '항하'는 인도 갠지스강의 한자 표현으로, '항하사'는 이 강의 모래만큼이나 많다는 뜻이다. 이런 수의 단위는 인도를 발원지로 하는 불교의 '화엄경(華嚴經)'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에서는 방정식을 푸는 것과 관련된 대수학 분야가 특히 발전하여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 부정방정식의 해법을 알아냈고, 삼각함수의 사인(sin) 값을 정확한 수준까지 계산했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