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암(癌)전문 치료센터인 연세의대 암센터가 문을 연 이듬해인 1970년, 이 센터가 물리학 전공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국내 처음으로 일본에서 ‘고에너지 선형가속기’를 도입해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려는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군 장교를 마치고 갓 제대한 한 물리학도가 말로만 듣던 최첨단 기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무작정 지원했다. 그로부터 36년. 물리학도로선 이례적으로 ‘의대 교수’가 된 청년은 방사선 치료 분야를 개척하며 우리나라 ‘의학물리학자 1호’로서 큰 업적을 남기고 정년퇴임을 맞았다. 추성실(秋成實·65) 연세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초창기부터 추 교수와 함께 방사선 치료를 이끌어 온 김귀언 연세암센터 원장은 "새 분야를 개척한 열정과 창의성도 남달랐지만, 다양한 계층의 의료진들이 화합해서 일할 수 있게 이끈 공로자"라고 평가했다. 퇴임하는 의대 교수로서는 드물게, 동료 교수뿐 아니라 병원 직원들까지 추 교수를 위한 환송회를 따로 베풀어 줬을 만큼 그의 자취는 컸다.
그는 황무지 같던 국내 방사선 치료 분야의 개척자다. 경북대 물리학과를 나온 뒤 연세대에서 핵물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암센터에 들어온 그는 낯선 기계와의 고투(孤鬪)를 시작해야 했다. 방사선 치료의 전례가 전혀 없으니, 방사선을 얼마나 어떻게 쪼여야 암세포만 없앨 수 있는지 하나에서 열까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야 했다.
"물리학 할 때는 실수하면 다시 하면 되지만 의학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잖아요, 환자 목숨이 달렸으니…."
그는 모두들 퇴근한 한밤이나 주말에 밀랍 인형에다 방사선을 쪼이는 시험을 해 보고 나서야 환자를 치료했다. 암 세포 주변의 정상조직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차폐장치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어느새 핵물리학 박사, 연세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돼 있었다. 이 분야의 교과서도 저술하고 의대생들에게 '의학에서의 물리학'도 가르쳤다. 하지만 퇴원하는 환자들이 의사에게만 고맙다고 할 뿐, 자신에게는 인사 한마디 없을 땐 너무 야속하기도 했다.
"내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듯한 괴로움을 못이겨 사표 쓴 적도 여러 번"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사표는 늘 반려됐고, 오히려 동료 의사들보다 그가 먼저 정교수로 진급했다. 그는 수술하는 동안 방사선을 쪼이는 근접방사선치료 세계 최다 기록을 세우고, 열로 암 세포를 죽이는 온열치료기를 최초로 만들었으며, 한국의학물리학회를 창립했다. 그동안 죽으러 가는 곳으로 여겨졌던 '암 센터'는 암 치료 중심지가 됐고, 첨단 컴퓨터가 가세하면서 3차원 방사선 치료의 시대가 열렸다.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래도 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뤘다고 이제는 자부합니다."
추 교수는 앞으로도 명예교수로서 암 환자 치료도 계속하고 학생들도 가르친다. 내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의학물리학회에 대한 기대도 남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