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의 폐 터널에서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고드름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직경이 2~5㎝, 길이가 20~100㎝에 이르는 수천 개의 고드름이 마치 양초를 세워 놓은 것처럼 솟아 있다는 것이다.
몹시 신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비슷한 자연 현상은 흔히 관찰되는 것이다. 겨울에 서리가 내리고 나면 흙이 푸석푸석해지고, 조금씩 솟아오르기도 한다. 자갈이 많은 지역에서는 바늘처럼 생긴 뾰족한 얼음 위에 작은 자갈이 올라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겨울에 싹이 트기 시작한 보리밭을 애써 밟아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알래스카나 시베리아에서는 그런 자연 현상 때문에 도로·철도·송유관에 심한 손상이 생기기도 한다.
'서리 융기(frost heave)' 또는 '동상(凍上)'이라고 부르는 이런 자연 현상은 물 분자의 특이한 성질과 열역학 원리 때문에 나타난다. 우선 겨울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지표면에 가까이 있던 물이 얼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한파가 밀어닥칠 때 수도관이 얼어 터지듯이 부피가 늘어난다. 이 때문에 단단하던 흙이 갈라져서 푸석푸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체인 얼음의 표면에 노출된 물 분자들은 이상하게도 액체와 비슷한 상태로 존재한다. 표면에 노출된 물 분자들은 내부에 있는 분자들과는 달리 강한 수소결합을 할 수 있는 이웃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는 1980년대에 미국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이다. 몸무게가 가벼운 어린 아이가 운동화를 신고 얼음 위에 가만히 서 있어도 미끄러운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땅 밑에서 생긴 얼음의 표면에 묻어 있는 물에는 온갖 화학물질이 녹아 있기 마련이고, 그런 물은 온도가 내려가도 쉽게 얼지 않는다. 겨울에 장독대에 있는 간장이 쉽게 얼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얼음에 묻어 있는 '차가운' 액체 상태의 물이 신기한 역할을 한다. 땅속 더 깊은 곳에 있는 '따뜻한' 수분을 빨아올리는 펌프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열역학적으로 따뜻한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많은 자유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나타나는 '열분자압력' 때문이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의 조직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과 똑같은 열역학적 원리에 의해서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다. 그렇게 빨려 올라온 수분도 차가운 공기에 의해서 식으면 결국은 얼어붙게 된다.
결국 지표면 바로 밑에서 생기기 시작한 얼음은 땅속 더 깊은 곳에 있는 수분을 끌어올려서 점점 더 커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의 부피는 더욱 더 늘어나서 위로 솟아오르게 된다. 땅속의 온도가 섭씨 1도 올라갈 때마다 열분자압력은 대략 1㎠의 면적에 11㎏의 추를 올려놓은 정도가 된다. 흙을 푸석푸석하게 만들고, 자갈을 밀어 올리고, 심지어 철로와 송유관을 구부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이다.
비슷한 현상이 전북 진안의 마이산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기도를 하기 위해 떠놓은 정화수에 고드름이 솟아오른다는 것. 이 현상은 흙에서 생기는 것과는 약간 다른 현상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열용량이 적은 그릇이 먼저 차가워지기 때문에 그릇과 맞닿은 부분으로부터 얼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에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중앙에 일종의 '숨구멍'이 생기게 되고, 내부에 있는 액체의 물은 차가워지면서 부피가 늘어난다. 결국 차가운 물이 숨구멍으로 조금씩 밀려 올라가면서 얼게 되면 위로 솟는 고드름이 만들어지게 된다. 집에서도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주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