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흔히 사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선악과를 사과로 묘사한 것은 한참 후인 5세기쯤이다. 사과를 선악과로 지목한 것은 로마 가톨릭이었는데, 여기에는 켈트 기독교와의 대립이 한몫했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접경지역 북쪽에 살던 켈트족은 사과를 숭배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켈트족은 로마 가톨릭과 유럽 기독교 세계를 놓고 대결했는데, 로마 가톨릭은 켈트 기독교의 성스러운 과일을 선악과의 전형으로 삼으면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그 결과, 사과는 천박한 성적 유혹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사회적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음식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금기의 음식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과 연계시켜 정리한다. 색욕, 폭식, 오만, 나태, 탐욕, 불경, 분노다.
색욕을 자극하는 것으로 지목된 대표적 음식은 토마토와 초콜릿이다. 야한 붉은 색의 열매, 자극적인 맛, 과육에서 풍성한 즙이 음흉스럽게 뚝뚝 떨어지는 모습….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들여온 토마토는 금단의 열매가 갖 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성직자들이 토마토에 정욕을 자극한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가 폭력과 색정을 일으킨다고 믿었는데, 이 중 색정에 관한 믿음은 유럽에도 전해졌다. 18세기 소설 '뒤 바리 백작 부인의 비화'에선 뒤 바리가 자신만의 비법으로 만든 핫 초콜릿으로 왕의 발기를 도운 다음, 매음굴에서 익힌 기술로 왕을 만족시켰다고 나온다.
오늘날 프렌치 프라이로 사랑받는 감자는 18세기 영국인들에게는 나태의 상징이었다. 영국인 신교도들은 아일랜드인들이 빵 대신에 지저분한 뿌리나 먹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잠이나 자고 간통이나 즐기는 족속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감자를 '게으른 뿌리'라고 불렀고, 이런 관행이 '카우치 포테이토족(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나 '포테이토 헤드(바보, 멍청이란 뜻)' 같은 비방으로 남아 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분열에는 미사 때 쓰는 빵의 조리법이 한몫했다. 동방 정교회는 빵을 부풀게 하는 발효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믿은 데 반해, 로마 가톨릭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나눠준 빵은 효모가 들어 있지 않은 빵이라고 주장했다.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분열은 기독교 제국을 약화시켰고,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을 텄다. 고금을 넘나들며 음식의 문화사를 요리하는 솜씨가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