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7년 6월 미국 하원의 국제관계위원회에 출석, 박정희 유신체제를 비난하는 증언을 하고 있다.

“김재규 특명받고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 요원이 김형욱을 유인. 프랑스 현지의 조직폭력배들에게 인계. 시신은 조폭이 처리. 이를 확인한 뒤 돈 건네”(전 국정원 간부 증언)

“내가 박대통령 특명받고 김형욱을 찾아가 만나 50만 달러 주고 회고록 원고를 입수했으나, 김형욱이 배신, 일본에서 책을 냈다”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차장 윤익균)

회고록 대필자 김경재 : “여가수가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했다”

김형욱은 살해됐다

“김형욱(당시 55세) 전 중앙정보부 부장은 김재규 중정 부장의 지시에 의해 살해됐습니다”(당시 중앙정보부 간부 출신 A씨)

“김형욱 부장은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유학생(중정 직원)이 유인해 죽였다”(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J씨)

정보부에서 2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A씨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 것을 대단히 우려했다. 정보부 동료들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뿐 아니라, 퇴직 당시 ‘업무상 취득한 기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어기게 된다는 게 A씨의 얘기였다.

“김형욱의 실종에는 유학생이 깊이 관여됐다”

“김형욱씨가 실종된 뒤 갖가지 억측들이 난무해 왔지만, 김형욱씨를 중앙정보부가 죽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김씨 실종사건이 일어난 지 20여 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안기부의 공작실력이 뛰어났다는 반증입니다.

김형욱 실종사건이 일어난 뒤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가장 먼저 안기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동시에 김씨 실종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를 심도 있게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씨 실종사건의 전말은 이미 다 드러났습니다. 김재규의 지시를 간접적으로 받은 프랑스 유학생의 유인에 의해 김형욱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정보기관이 그 기관의 책임자였던 김씨를 살해한 사실 자체만을 부각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 김형욱씨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밝혀 내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J씨도 “김형욱씨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의 지시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했다.

“김형욱씨가 정보부 요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은 정보부 직원들 간에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정보부의 고위 간부를 지낸 인사들은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김형욱씨의 죽음엔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한국 학생이 깊이 관여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 유학생이 중정 요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으나,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누군가가 유학생을 뒤에서 조종했을 것입니다”

윤일균-이상열 라인

김형욱을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유학생이 죽였다면, 김재규와 유학생을 연결해 준 역할을 한 인물이 별도로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재규의 지시를 받아 이 유학생을 뒤에서 조종한 인물은 누구인가.

이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김형욱씨가 실종됐을 당시 정보부의 지휘체계와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파견돼 있던 정보부 요원들의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보부 본부의 김재규 부장 밑에서 해외업무를 총괄한 인사는 윤일균(전 국제공항관리공단 이사장) 당시 해외담당 차장이었다. 尹차장 아래에는 김관봉(현 경희대 NGO대학원 객원교수) 국제정보국(유럽담당) 국장, 이종찬(전 국정원장) 해외담당 부국장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한국대사관에는 이상열(전 버마대사)씨가 공사로 정보업무를 책임지고 있었고, 이공사 아래에는 최용찬(전 후쿠오카 총영사)씨와 황규웅(전 국정원 해외공작국장)씨가 참사관으로 근무했다. 이들은 모두 정보부 요원이었다.

기자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위의 인사들 중 이상열씨를 제외한 모든 인사들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했다. 이들은 기자와의 접촉 과정에서 김형욱씨가 실종됐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 주었지만, 김씨 실종(사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모른다”,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월간조선은 김형욱씨 실종사건이 발생한 1979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 사건에 관한 탐사보도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정보부에 근무했던 인사들의 증언을 폭 넓게 소개했다.

월간조선이 그동안 보도해 온 기사의 목록을 보면 ─‘김형욱은 어디로 갔는가’(권영기 등·1984년 9월호) ─‘충격공개/회고록 출판을 둘러싼 김재규와 김형욱의 비밀협상’(조갑제·1986년 1월호) ─‘박정희 대통령과 김형욱의 실종’(吳交力鎭·1987년 1월호) ─‘김형욱 실종과 정보부의 역할’(최보식·1994년 11월호) ─‘김경재 인터뷰 - 김형욱은 회고록이 완성된 직후 한 여성 연예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실종됐다’(김연광·2004년 3월호) 등이다.

[▲ 기사전문은 월간조선 3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