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비포 선셋'이 개봉하면서 전편 '비포 선라이즈'에 자연스럽게 세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 영화가 탄생한 90년대 중반은 X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있어 문화적으로 정신없는 시기였다. 새로운 세대로 내몰리며 잡다한 마케팅의 대상이 되었고, 세기말적인 테크노 뮤직이 범람하며 문화의 중심이 인간인지 테크놀로지인지를 잠시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조용히 등장한 '비포 선라이즈'는 일종의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전 세계 젊은이들을 단번에 매료시켰다.
유럽을 여행하던 미국 청년과 할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프랑스 처녀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게 된다. 서로 마음이 통한 이들은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만 데이트하는 것에 동의한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진행되는 이 두 젊은이의 대화는 100분 동안 엿들어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 아름다운 빈을 배경으로 두 사람 사이를 메우는 지적이면서 유치하고,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대화는 학생 시절에나 느껴봤을 법한 설레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하룻밤 동안의 로맨스가 멋진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몇 개월 후 다시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서 실제로 재회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관객은 물론 감독과 주연 배우인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들은 전편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비포 선셋'에서 이어가기로 의기투합한다. 에단 호크는 '비포 선셋' 개봉과 동시에 소설을 출간하여 화제가 되었을 만큼 다재다능하다. 줄리 델피도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전공한 실력파다. 찰떡궁합과 같은 연기력을 보여줬던 두 배우가 시나리오 제작에 직접적으로 참여를 한 사실이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소설가와 환경운동가로 재회한 두 사람은 전편과는 반대로 '해가 지기 전까지'만 짧은 만남이 허락된다. 이제 30대인 이들은 20대의 겉멋이 들어가지 않은 솔직 담백한 언어로 섹스가 배제된 성인들의 로맨스를 멋들어지게 보여준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는 이 두 영화를 도저히 갈라놓을 수 없다고 DVD로는 한데 묶어서 출시한다. 두 작품의 상영 시기에는 10년이란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화질과 음질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특히 '비포 선라이즈'는 그동안 국내에 DVD로는 출시되지 않았다가 이번에야 '비포 선셋'과 함께 선보인다. 스페셜 피쳐에는 달랑 10분 정도의 다큐멘터리만 포함되어 있지만 저가 정책에 힘입은 저렴한 가격이 이에 대한 서운함을 보상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설연휴 해외 여행상품들은 거의 동이 났다고 한다. 극장의 번잡함이 싫고 인생에 상큼한 활력소가 필요하다면 이들 커플과 함께 떠나는 3시간 동안의 유럽 여행을 권하고 싶다.
(박진홍·DVD프라임 대표 park@dvdpri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