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보육원에 맡겨진 뒤 부모 얼굴도 모르고 자란 15년. 외롭고 힘들 때면 보육원 건물 옥상에서 밤하늘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녀가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오는 4월 일본 유학을 떠난다.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문순실 양

제주도 서귀포 제남보육원의 문순실 (18)양은 일본 문부성이 주관한 ‘전수학교(專修學校) 장학생 선발시험’에 작년 8월 도전, 올 1월 중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일본의 전수학교는 직업 관련 전문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의 전문대와 비슷하다. 이번 장학생 시험에는 100여명이 지원해 인문계 6명, 실업계 5명 등 11명이 최종 선발됐다.

“시험 과목 중 일어는 고1 때부터 꾸준히 공부했던 덕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실업고를 다녔기 때문에 영어와 수학시험 준비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순실양은 중문상고를 이달 5일 졸업했다. 제남보육원 이상준(47) 원장의 적극 지원으로 일어학원에 3년간 다닌 문양은 일본어능력검정시험에서 2급을 땄다. 그는 이번 대입도 치러 제주대 일문학과에 합격했지만, 일본 유학을 택했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고(商高)에 진학해 3년간 컴퓨터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일어 공부에 몰두했던 것도 그래야만 기회가 올 것 같아서였죠.” 순실양은 앞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한 뒤 도쿄디자인학교에서 2년간 산업디자인을 전공할 예정. 졸업 후 현장경험을 쌓은 뒤 유럽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3년 동안 학비는 면제받고 월 13만5000엔(약 135만원)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홀로서기에 부족한 부분은 아르바이트로 보충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요? 없어요.” 일찍 철이 든 순실양을 보육원 교사나 친구들은 ‘할망’(할머니의 제주 사투리)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저는 부모님은 물론 친척도 없습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 유일한 저의 재산이에요.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