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한가위와 함께 민족 대이동이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명절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음도 날씨도 추워만 가는지.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 자리를 빼앗겼다가 그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서울 명동, 그 화려한 공간에 찾아온 2005년 ‘매서운’ 설 거리 풍경.

명동에 바람 매섭게 불었다. 그 바람 속 흩어져 가는 군상 사이로 희망이 서 있다. 영화 주인공으로 분장한 젊은 연기자들,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몰려드는 일본인들을 붙잡으러 거리에 나섰다. 그저 연기가 좋아서 거리에서 꿈을 키운다. 불경기로 세상이 신음하고 있지만 꿈이 사라진 건 아니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블로그)canyou.chosun.com

#1 '뽑기 할머니'의 한숨

"뉴스 봤더니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헛소리야. IMF 때도 뽑기는 팔렸어. 그런데 지금은 이것도 안 팔려. 하루 2만원 벌기도 어려워. 저 아저씨 있지? 옛날엔 부러울 정도였어. 그런데 지금은 안쓰러워, 안쓰러워…."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옆 골목에서 뽑기를 만들던 할머니가 말했다. 골목은 좁고 건물은 높아 워낙에 볕이 잘 들지 않는 명동인지라, 할머니가 자리잡은 유네스코 옆 골목엔 바람도 대단하다.

달고나 혹은 뽑기라고 부르는 이 주전부리가 하나에 500원이니, 하루에 40개를 못 판다는 이야기다. 500원짜리가 팔리지 않는 혹독한 불경기. 그래서 명동에 뽑기장사가 여덟 명 있었는데, 세 명이 포기하고 전업한 지 오래다.

일본 관광객들이 뽑기 할머니를 둘러싸고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부러웠다가 안쓰러워진' 장애인 걸인이 지나갔다. 있잖은가, 스피커에 찬송가 틀어놓고 땅바닥을 기어다니시는. 사람들은 바삐 추위 속으로 사라지는데, 이 양반 앞에 있는 빨간 플라스틱 돈바구니는 텅 비었다. "내 이름은 절대 절대 쓰지 마, 동네 사람들이 나 이거 하는 거 몰라" 하고 뽑기 할머니가 손을 내저었다.

#2 욘사마 간판맨 "한류 알려요"

문득 보니 명동거리에는 일본어 일색이다. 좌판은 물론, 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선교사들도 일본어 간판을 내걸고 성경을 읽고 있다. 뽑기할머니와 사진을 찍은 일본 사람들을 쫓아가니, 이거 봐라, 군중 틈에 욘사마님이 계신다.

영화 '스캔들'의 배용준과 전도연 그대로 분장한 김태영(20)·김혜진(21)씨 앞에서 일본인들은 다시 기념사진을 찍는다. "가와이(귀엽다)!" 일본 소녀 모리야 미쿠양이 지나가자 혜진씨가 귀엽다고 소리치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모리야양, 난생 처음 본 한복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재미있어요. 연기자되는 게 꿈이니까요. 그저 우리 봐줬으면 좋겠다, 그 생각만 해요."(김혜진) 이들은 한류를 타고 이곳에 문을 연 한류체험관 '씨네아이스튜디오'의 연기자요, 걸어다니는 홍보맨, 그러니까 '간판맨'들이다. 골목 저 아래에는 '뽑기도 안 팔리는' 세상이 추위에 떨고 있는데, 젊은 간판맨들은 꿈을 꾼다. 한복 하나 달랑 입고 두 시간째 바들바들 떨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놀듯 일하고 일하듯 놀기. 피할 수 없으면 즐길 것.

#2 칠순 넘은 노래방 간판맨

중앙로 한 귀퉁이, 정순익씨가 쇠로 만든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은 지 네 시간째다. 올해 일흔두 살 된 정씨 한 손엔 '노래방 한 시간 5000원' 간판이 들려 있다. 앞만 보면서 허겁지겁 사느라, 서울 생활 30년 동안 명동 구경은 이 일로 처음이라고 했다.

한 손에는 집에서 가져온 장갑이, 한 손에는 누가 흘리고 간 장갑이 끼워져 있고 그 안에는 목장갑도 한짝씩 있다. 아내가 짜준 내복 두 벌, 솜바지, 오리털 잠바, 마지막으로 양말 두 켤레. 손자들 보면서 아랫목에 계셔야 할 분이 바람을 맞으러 그리 중무장을 하고 거리로 출근을 하다니.

"할멈도 고만두라 그러지. 그래도 웃긴 게, 월급받아 돈 몇 푼 던져주면 좋아한다니까. 할망구는 맨날 친구들하고 산에 댕기면서 논다우. 나는 바깥 바람 쐬니까 몸 좋아지는 거 같긴 해." 그가 웃었다. "길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많어. 그래서 가끔씩 명동 한 바퀴 휘휘 돌면서 간판 왼다우. 묻는 사람들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받는 월급이 50만원이다. "설엔 고향 가야지. 충북 영동이여. 형님하고 동생이 아즉 고향 지키고 있거든. 선물 몇 개 사들고 내려가야지. 고향 갔다 다시 출근하면 길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몰르겄네." 안쓰러웠던 마음은 할아버지 말씀에 금방 풀어졌다. 뽑기할머니의 냉정한 세상 평가, 그리고 젊은 간판맨들의 희망과 은발 간판맨의 50만원짜리 낙천(樂天).

#4 장애 딛고 희망을 노래하는…

명동성당 앞 언덕. 지난 세기, 성한 간판 하나 없고 아스팔트는 돌과 최루탄 가루와 물대포가 쏴댄 물로 뒤덮였던 명분들의 전쟁터. 거기가 성시대(48·아래 사진)씨 일터다. 47년 전 귀한 아들 낳았다고 크게 벌인 돌잔치때, 하필이면 미닫이문이 머리 위로 떨어져 졸지에 뇌성마비가 되어 버린, 그래서 표정도 발음도 너무나도 어색한, 장애인이다. 작은 구멍가게는 아내에게 맡기고 일주일에 세 번 명동에 나와 노래를 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노래에 행인들이 내준 돈, 몽땅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데 쓴다.

"최루탄이 휠체어 바로 옆에서 터져 눈물 콧물 범벅된 적도 있고, 데모대에 섞여 두들겨 맞기도 많이 맞았죠. 옛날엔 '짭새' 앞잡이라 오해받았고, 요즘엔 데모대 앞잡이라 오해받아요. 그래서 이쪽저쪽 다 적당히 거리를 두려 해요. 비겁하지만 내 몸이 이러니."

명동 인심, 많이 변했다. 옛날엔 그냥 부탁만 해도 자판기 커피 갖다주곤 했는데, 지금은 돈 주고 빼달라고 해도 잘 안 해준다. 1000원짜리 지폐를 모금함에 넣어주면 "감사합니다", 동전 넣으면 "땡큐"라 하는데, 요즘엔 그 '땡큐'가 늘었다. 하지만…. "그래도 얼마 전엔 고급자가용 몰고 가던 중년부인이 차에서 내려 세종대왕님 넣어주고 가더라고요." 그를 만나는 동안에도 "땡큐"가 여러 번 나왔다. 땡큐가 됐건 감사합니다가 됐건, 노래 도중에 그 말을 뱉는 것도 그에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심장병 어린이의 맑은 눈이 반짝인다.

다시 음악을 트는 그의 뒤로 명동성당 첨탑이 석양을 받는다. 언덕 아래엔 불들이 하나 둘 켜지고, 명동이 빛난다. 설, 춥고 어렵지만 그래도 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