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제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죠."
여자 프로농구 신세계의 정진경(27). 1m90·76㎏의 체격을 지닌 정통 센터다. 겨울리그 현재 성적은 평균 7.1점(23위) 6.3리바운드(13위) 2.8어시스트(9위).
그녀의 이름은 얼마 전까지 농구 팬에게도 낯설었다. 국내 실업무대에서 뛴 해가 1996~97년 두 차례 농구대잔치가 전부다. 그녀는 지난해 대만 실업리그 2위 팀인 타이위안(臺元)의 주전 센터로 뛰었다. 대만 이름은 '치전징(戚珍敬)'. 입양 형식으로 귀화해 양아버지인 소속팀 사장의 성을 따랐다. 친한 동료 사이에선 '진진(金金)'으로 불렸다. 중국어도 잘해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은퇴 후 소속 팀 내 일자리를 일찌감치 약속받았다.
그런데 정진경은 그 '보장된 생활'을 박차고 7년 전 아픔을 안고 떠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정진경은 숭의여고 재학 시절 한국 최고 센터 계보를 이을 재목감으로 기대받았다. 국가 대표로도 뽑혔다. 하지만 고졸 후 입단한 실업팀 코오롱이 1년도 채 안 돼 해체되면서 험난한 인생이 시작됐다. 자신의 희망과는 달리 팀이 결정되자 반발했다.
"어떤 선수는 드래프트 없이 원하는 팀으로 가는 걸 보면서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했어요."
마침 전 국가대표인 이형숙씨가 감독으로 있는 타이위안의 입단 제의가 있자 곧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5년간 국내 선수 자격 정지를 감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협회로부터 동의서도 받지 못해 외국인 선수로 뛰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결국 대만으로의 귀화 외엔 다른 선택이 없었다. 하지만 고국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부모님 집에 협박전화가 걸려 왔고 '매국노'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시련은 계속됐다. 2000년 두 차례나 오른쪽 무릎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았고, 2001년 가을리그에서 같은 부위를 또 다쳤다. 한때 낙심해 농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정진경은 구단의 배려로 2002년 봄부터 일본에서 1년여 동안 하루 5시간 이상의 재활훈련에 집중했다. 결국 2003년 겨울엔 이전 리그 최하위였던 소속 팀을 2위로 끌어올렸다. 신세계 김윤호 감독으로부터 국내 복귀 제의를 받은 것은 바로 그 직후. 처음엔 "마음이 힘드니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대만을 찾은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고 '태극 마크'에 대한 꿈이 꿈틀거렸다. 정진경은 대만으로 갈 때 사람들이 왜 비난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었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야 그 기대를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태극 마크를 달고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고 싶다"고 감히 말하고 있다.
입력 2005.01.3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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