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전투식량은 나폴레옹시대의 유리병조림에서 발전되었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유리 대신 캔(양철깡통)통조림을 개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것이 미국에 건너가 남북전쟁에 사용됐고, 2차 대전 때 미군의 상징이 된 C레이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통조림은 전투식량에서 사라지고 봉지째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하면 요리가 되는 레토르트식품이 비상식량으로 대체됐다.

▶옛날 전쟁 기록을 보면 조상들은 주먹밥이나 떡, 곡물가루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주먹밥은 소금물에 담근 손으로 간간하게 밥을 뭉쳐 만들었다. 황석영의 글에 보면 “6·25 때 나도 그런 주먹밥을 먹은 기억이 있고, 전선의 군인들은 고지 위로 날라온 얼어붙은 주먹밥을 으깨어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평시에는 병정들에게 국밥이라도 먹였겠지만, 불을 피우면 정체가 노출되는 전시에는 주먹밥이 제격이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는 난생 처음 레이션 맛을 보았다. 고기와 야채, 비스킷과 커피 등 통조림 6개로 구성된 1인분 간편식 상자는 부자나라 미군을 상징하는 영양식단이었다. 월남 참전병들은 미제 C레이션 외에 김치통조림을 곁들인 K레이션도 맛봤지만 국적 없는 짬밥에 물린 기억도 갖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배식받는 병영식사는 짬밥이라고 해야 추억이 떠오른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먹던 짬밥은 꿀맛이었다. 반찬이래야 멀건 국에 김치 몇 조각, 어쩌다 나오는 고깃국은 소가 헤엄쳐 지나간 것 같다 해서 ‘황우도강탕’이라고 불렀다. 그나마도 양 많은 것은 오래된 군번 차지였다. 초코파이 세대를 거쳐 인스턴트 세대로 바뀐 요즘 군인들은 살이 찔까 걱정이라니 세상 참 변했다.

▶국방부가 군 장병에게 제공하는 식단을 51년 만에 ‘웰빙’ 개념에 맞게 바꾼다고 발표했다. 한우고기와 돼지갈비 급식 횟수는 늘리되 칼로리는 낮추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비만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급식기준은 1954년 한미합동급식위원회가 정한 것으로 1일 열량이 3800kcal다. 이를 500kcal 낮추되 특전사 요원처럼 하루 4000kcal가 필요한 경우에는 간식으로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고단백 재료를 쓴다고 ‘웰빙 짬밥’이 되는 건 아니다. 즐거운 식탁의 조건이 반드시 좋은 메뉴만은 아니다. 좋은 분위기가 곁들여져야 한다. 남자들의 세계인 병영(兵營) 속의 분위기는 어떤 것이 제격일까.

(정중헌 논설위원 jh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