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연예인들이 누드를 찍고 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몸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어요."
남자 배우가 누드를 찍는 일은 별로 없다. 간간이 옷을 벗은 남자 배우들이 있었지만, 남자건 여자건 이들의 누드에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fall'이란 영어 단어는 주어의 성별에 의해 의미가 달라진다. 주어가 남성일 때 'fallen'은 '전사했다'는 뜻이지만, 여성인 경우에는 '타락했다'는 의미가 된다. 남성과 여성에게 '추락'은 다른 의미라는 소리다. 남자에겐 사회적 명예가, 여자에겐 성적 방종이 곧 추락을 의미한다.
여성이 육체·자연으로, 남성이 문화·이성으로 재현되어 온 문화적 예는 무수하다. 마티스의 작품 '삶의 기쁨'. 이 공상의 세계에 등장하는 온갖 사람들은 자유롭다. 그러나 마티스는 이 이상향의 자연 속에 남성의 나체를 집어넣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나체이며 성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인간들은 모두 여성이다.
남성 화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의 작품 안에 남자들의 나체가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법은 거의 없다. 설령 간혹 있다 해도 그들은 늘 정확한 사회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거나,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 그들은 키르히너의 수영 장면에 등장하는 남자들처럼 최소한 자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불편한 모양새로 등장한다.
남성이 옷을 벗을 땐 '은유적 의복'이라는 '고뇌'가 덧씌워진다. 여자의 나체는 '자연'이지만 남성의 나체는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과 장소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여자의 나체는 무명성의 상태이지만 남성의 나체는 '문화적으로 정의된' 상태로 등장한다.
여자가 나체로 고뇌한다면? 안 팔리는 누드가 될 뿐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누드집이 단순히 '인체의 아름다움'이라는 코드로만 환원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민가영·홍익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