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작가모임에 참석한 작가와 평론가들. 왼쪽부터 구중서 안영실 구자명 황충상 최서윤 최옥정 김홍근 김의규씨. <a href=mailto:mwlee@chosun.com><font color=#000000>/ 이명원기자</font><

'미니픽션' 이란 새로운 장르의 창출인가? 문학마저도 경박단소한 세태에 매몰되는가?

A4용지 한 장 분량의 초미니 창작물 미니픽션(minifiction)을 인터넷 시대 새로운 글쓰기 대안으로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니픽션은 단편(200자 원고지 70~150장)과도 구별되는 문학장르. 나뭇잎 한 장에 다 적을수 있다는 뜻의 엽편(葉篇)소설, 핵편(核篇·nuclear story)소설 등으로 불린다. 기존의 픽션이 영화라면, 미니픽션은 한 장의 사진이라고 할수 있다.

미니픽션 작가 30여명은 27일 성공회대 성 미카엘성당에서 제1회 미니픽션 작가모임 및 작품낭송·세미나를 열고, 새로운 창작형식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앞서 지난 8월 미니픽션 작가모임(대표 김의규 성공회대 교수)을 만들고, 홈페이지(minifiction.com) 게시판에 작품을 올리는 등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문학나무'는 겨울호에 미니픽션 특집을 마련했다.

왜 지금 미니픽션인가? 미니픽션 작가들은 우선 "사이버 시대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을 내세운다. 원고지 위에 글쓰기에서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 컴퓨터 화면상에 글쓰는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글쓰기의 호흡이 갈수록 '짧고 간결'해지는 추세에 걸맞은 장르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화면상에서의 글쓰기는 이제 누구에게나 일상이 되어버림에 따라 일반인들도 자기 표현의 적절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니픽션은 20세기 후반 중남미의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의 대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쪽 분량에 반짝이는 감각을 담은 소설집을 낸 적이 있으며, 영미권에서는 '플래시 스토리'(flash story)로 불린다. 1998년 멕시코에서 첫 세계대회 이후 2년마다 미니픽션 세계대회도 열리고 있다.

김의규 교수는 "한 화면에서 편히 읽을수 있는 짧은 글들을 선호하는 인터넷 환경에 꼭 들어맞는 장르"라며, "컴퓨터 화면에서 그래픽이나 음악적 요소를 겸비한 멀티미디어 포멧에 담거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도 작품을 돌려보는 등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홍근씨는 "얼마 전 참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체험을 글로 적어두고 싶은 욕구가 생겨 블로그 스타일로 미니픽션을 처음 써보았다"며, "앞으로는 누구나 미니픽션을 쓰고 돌려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공간'이란 작품을 낭송한 소설가 구자명씨는 "장편으로도 늘릴수 있는 내용이지만, 나머지는 독자들이 해석하고 상상해 스스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도 매력"이라고 했다. 소설가 황충상씨는 "아침 신문에 난 한 스님의 이야기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 모임에 오는 버스 안에서 수첩에 미니픽션 한 편을 썼다"며, 이 장르의 간편성을 강조했다.

아직은 모색단계인 한국에서 미니픽션이 제대로 된 문학장르로 자리 잡으려면 나름의 문체와 스토리, 주제의식을 담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설가 윤후명씨는 "단순한 형식실험에 그치지 않으려면 치열한 문학정신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문학평론가 구중서씨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간결하게 포착하는 장르의 특성을 살리려면 그 내용에 걸맞은 기법이나 문체 등과 결합할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규 교수는 "짧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통찰과 여운의 아름다움, 시적 진실을 담아내 콩트나 에세이, 메모 등과 차별화하고 있다"며 "여러 장르의 장벽을 허물어 각종 소설작법 실험을 펼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