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200자 원고지로 5만여장, 집필기간 17년의 대기록과 함께 1967년 일본에서 탄생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초(超)베스트 ‘스테디셀러’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만 판매부수 1억수천만부에 70년대 한국에서도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서는 아파트 집집마다 가정용 장서로 4000만부 가량이 팔렸다. 오죽했으면 운전면허시험 교재 다음으로 많이 그리고 꾸준히 팔리는 책이라고 했을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망’은 어떤 출판사에서 나왔건 관계없이 임의로 줄이고 빼고 잘못 번역한 오역의 백과사전이었다. 당시 출판 및 번역 역량의 반영이겠지만 그 때문에 문장 하나 하나의 세세한 결까지 읽어야 하는 이 작품의 진가(眞價)보다는 오다 노부나가가 어떠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떠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떠니 하는 축약된 줄거리 중심의 인물론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았다.

야마오카 소하치(1907~1978)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말할 것도 없이 전후 폐허상태의 일본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관통하는 인물로 도요토미가 아니라 도쿠가와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서 이미 작가의 의도는 드러난다. 전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평화의 원리로 충만한 새 세상을 꿈꾸고 실현한 인물이 바로 도쿠가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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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일본과 한국을 휘몰아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선풍이 평화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고 독해를 한다면 그것은 뭘 모르는 분석이라는 면박을 받기 십상이다. 우선 철저한 고증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만나 끊임없이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인간의 깊은 고뇌를 다루다가 어느새 긴박한 전쟁장면이 나오고 난세(亂世)를 헤쳐가는 각양각색의 인간들의 지혜와 좌절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문체나 내용이 지나치게 ‘일본적’이어서 거부감을 갖는 한국인들도 많다. 특히 식민지 체험을 가진 우리로서는 일본의 역사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식민지 상처도 아물 만큼 아물었다. 70년대 한국독자들과 달리 이 작품을 그 자체로서 볼 만한 여유와 시야가 확보되었다는 뜻이다.

그 때문일까. 한국에서는 솔출판사가 정식계약을 체결하고 4년간의 번역작업을 거쳐 2001년 32권 전집이 나왔다. 국내에서 ‘대망’이라는 이름으로 4000만부 가량 팔렸다면 충분할 법도 한데 불과 3년 남짓한 기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또다시 100만부(약 3만여질)가 넘게 팔렸다.

더욱이 지금 한국 사회는 위에서 아래까지 편가르기가 한창이다. 어떤 문인은 이런 상황을 ‘지옥’에까지 빗댈 정도다. 지옥 정도는 아니겠지만 난세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분열이 심해지면 통합을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특히 리더십의 실종으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면 통합의 리더십을 갈망하는 것은 민심의 자연스런 흐름일 것이다. 통합에의 열망이 실현되지 않는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평화와 통합의 지도자에 대한 갈증은 더욱 깊어갈 것이고 그에 관한 책을 찾는 독자도 계속 늘어만 갈 것이다. 밤이 깊어야 새벽이 온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