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김건모는“이번이 마지막 인터뷰 사진”이라고 했다.

김건모(36)가 군 문선대 복무 중이던 90년대 초, 그가 키보드 앞에 앉아 노래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평소 그는 신경질적이랄 만큼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악기 앞에 앉자 그가 건반인지 건반이 그인지 모를 만큼 악기와 한 덩어리가 됐다. 그의 노래에 대한 편견섞인 애정은 그때 시작됐다.

그가 아홉 번째 음반을 곧 내놓는다. 새 음반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방송활동 없이 공연으로 승부하겠다”고 밝힌 것이 더 큰 뉴스다. “공연으로만 음악을 알리겠다”고 선언한 그는 9월 10일부터 사흘간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이후 전국 15개 도시를 돌 예정이다.

“일종의 모험이죠.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제 TV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기보다, 나를 보려고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노래하겠다는 겁니다.” 데뷔 12년째인 가수 김건모의 각오 뒷면에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엿보였다. 그 역시 “신인 때는 방송국 가서 열심히 인사하고 노래하면 됐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꽉 차 있죠”라고 했다.

그의 새 음반은 한층 풍성한 음악을 담고 있다. 8집만 해도 “룰루랄라 강남갔던 제비도/다시 돌아오는데”(제비) 같이 귀에 쏙 꽂히는 후렴구가 있었는데, 이번엔 별로 띄지 않는다. 나원주가 편곡하고 관현악을 아낌없이 쓴 노래 ‘가족’은 컨템퍼러리 재즈에 김건모의 보컬이 실려 있다.

참신한 발견은 ‘사랑이 날 슬프게 할 때’란 노래다. 점잖은 척 섹시한 클라리넷 연주에 이은 보사노바 리듬과 김건모의 ‘반(反) 보사노바적’ 보컬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도 “보사노바에 고음 보컬은 안 어울려요. 이런 게 보사노바지” 하며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명곡 ‘걸 프롬 이파네마(Girl From Ipanema)’를 흥얼댔다.

타이틀곡 ‘잔소리’는 그의 명곡 ‘흰눈이 오면’의 뒤를 이을 발라드. 느린 곡에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김건모의 노래는, 원조 함흥냉면처럼 질기고 탱탱하다. 힙합 듀오 리쌍이 참여한 힙합 댄스곡 ‘Mr. 빅맨’, 그루브(가락)를 서핑하듯 타고 넘는 레게 곡 ‘여자들이란’이 음반 분위기를 밝혀준다.

그는 ‘사랑과 평화’의 1979년작 ‘장미’를 리메이크했다. 16마디짜리 긴 전주가 끝나면 “그대가 보내준” 하고 김건모의 노래가 한 발을 쓱 들이민다. 라텍스 고무줄 같은 김건모의 음색은 이 노래에서 ‘효율 100%’에 육박한다. 김건모는 마지막 곡으로 정풍송의 곡 ‘석별’을 불렀다. 피아노와 현의 단순한 반주에 맞춰 “너만을 사랑했노라/진정코 사랑했노라”하는 비장한 가사를 들려준다.

“이제 ‘잘못된 만남’ 시절의 김건모는 잊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때이고, 그 길을 공연에서 찾으려고 하니까요.” 그는 “찾는 중”이라고 했지만, 길은 이미 찾았다. 다만 그 험로(險路)를 끝내 완주하는 것이 지독하게 힘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