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보급운동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조선일보가 발행한 문자 보급용 교재를 통해 농촌의 문맹자에게 한글을 가르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조선일보가 1929년 시작한 이 운동에는 학생 3천명이 넘게 참가했고, 문자보급용 교재‘한글원본’ 39만부가 배부됐습니다. 1934년엔 참여 학생 5천여명, 교재 100만부라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동아일보도 31년‘브나로드 운동(농민 속으로)’ 이라는 문맹퇴치운동을 펼쳐 조선일보와 선의의 경쟁을 벌였죠. 1932년 14세의 나이로 이 운동에 참여한 장준하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_ 이때부터 나는 신문을 높이 보게 되었으며 인연 깊은 나의 지도자적 대상으로, 아니 당시 우리 온 겨레를 지도하고 있는 존재로 아주 믿어버리게 되었다. 실로 이 무렵 나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비극의 나라였으며, 칠흑 장막과 같은 절망의 나라였다. (중략) 그런데 오직‘동아’ 와‘조선’ 이 있었던 것이다._
조선과 동아의 이 문맹퇴치운동은 총독부의 방해로 35년 동시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언론학자 정진석 교수는 이 운동을 _ 조선 인구의 90퍼센트에 달하는 문맹을 타파하고 한글을 보급하여 민족정신을 선양하려는 실천적 항일운동_이라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