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찰관 두 명을 살해하고 달아나 수배를 받아온 이학만(35)이 8일 서울 한 주택가 연립주택에 침입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침입=이학만은 이날 오후 2시쯤 강서구 방화3동 H연립 2층 박모(여·49)씨 집에 중간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뒤 거실로 나와 길이 30㎝(날 길이 16㎝)의 흉기로 박씨와 박씨의 외손자 김모(4)군을 위협했다. 이학만은 "내가 경찰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밝혔고, 박씨는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박씨가 손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박씨는 “내 아들 같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 국수를 끓여주마”라며 안심시킨 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옷이 더러워진 이학만에게 함께 사는 사위 셔츠와 새 칫솔을 주고 점심상도 차려줬다. 이학만은 “나는 곧 죽을 테니 돈이 필요없다”며 손자에게 1만3000원을 건넸고, “경찰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약수터에서 씻고 길에 버려진 옷을 주워 입으며 생활했다”고 주장했다.
◆검거=이학만은 오후 6시30분쯤 중간방에 들어가 컴퓨터로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박씨는 "청소를 해야겠다"며 안방에 들어가 진공청소기를 켜놓은 채 경기도 광명에 있는 아들 신모(29)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두 명 죽인 사람이 지금 집에 와 있다. 네가 신고해야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박씨는 또 경찰이 들어올 수 있도록 중간방 창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이후 신씨가 6시37분 112 신고, “경찰살해범이 있다고 하는데 조심스럽게 찾아가 보라”며 주소를 알려줬고, 경찰은 6시42분 공항지구대 소속 경찰관 4명을 현장에 보냈다. 출동 경찰이 박씨 집 초인종을 누르자 박씨는 김군을 업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인터폰 화면으로 경찰을 확인한 이학만은 안방에 들어가 흉기로 배를 찌르며 자해를 시작했다. 그 사이 경찰은 중간방 창문으로 진입, 6시55분 이학만을 붙잡아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에 옮겼다.
이학만은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려뒀냐”고 경찰에게 말했고 2시간이 넘게 응급 수술을 받은 뒤 밤 11시5분쯤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의료진이 전했다.
◆박씨 집에 들어간 이유=경찰은 "이학만이 1996년부터 1년 반 동안 검거 현장에서 300~400m 떨어진 한 옥탑방에 거주했다"며 "검거 현장 인근 공터에서 이학만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흰색 크레도스 승용차가 연료가 다 떨어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차량은 지난 2일쯤 서울 구로동에서 도난당한 차량이다. 경찰은 "차를 타고 숨어 지내다 연료가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씨 집 중간방의 경우 창문에 창살이 없고 언덕길에 인접해 있어 외부 침입하기 쉬웠다"고 설명했다.
◆형량=이학만은 살인죄가 적용돼 최고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등 중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숨진 경찰관이 가슴 등 급소를 관통당해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데다 직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을 살해해 특수공무방해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적용이 가능하다. 경찰이 내건 현상금 5000만원은 이학만 침입 사실을 경찰에 알린 신씨 가족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학만 사건 일지
1일=오후 9시25분 마포구 노고산동 C커피숍에서 서부서 심재호 경사, 이재현 순경 흉기로 살해 후 도주.
2일=오전 8시55분 영등포구 신길6동 주택가에서 이씨의 택시 발견. 주변 공터에서 피묻은 바지, 양말 발견. 공범 김모씨 검거. 이씨 전국에 공개수배령.
3일=이씨 현상금 2000만원. 수배전단 5만장 배포. 이씨 주민번호로 가입된 인터넷 아이디가 돈암동 삼성아파트에서 접속. 경찰 100여 가구 수색했으나 허탕.
4일=12살 초등생이 수배 전단지에서 본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로 입력한 것 확인.
6일=현상금 5000만원으로 인상.
8일=오후 6시55분 강서구 방화3동 H빌라에서 할머니와 손자 붙잡고 인질극 벌이다 검거. 자해 시도, 이대목동병원 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