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표현하자면, 이 사내, 지금 ‘사회화’가 진행 중이다. 인터뷰마다 “몰라요”와 “싫은데요”라는 단답을 반복한 탓에 저널에게 무력감을 안겼던 배우. “친구들이 ‘너는 남자들에게만 인기 있다’고 놀린다”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할 때부터 수상하더니, 어려운 질문에는 ‘무려’ 3분 가까운 시간을 쉬지 않고 답변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를 아는 영화계 인물들은 “기록적인” 시간이라 말한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양동근은 자신의 몸 하나로 일본의 무도계를 제패한 사내, 최배달을 연기했다. ‘수취인 불명’(2001), ‘와일드 카드’(2003)에 이은 9번째 영화. 스물다섯 나이에, 외모가 아닌 연기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충무로에 새겨 넣은 이 희귀한 젊은 개성을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가지 질문과 대답.

―대중들은 방학기 원작만화와 ‘넘버.3’에서 송강호의 “너 황소? 나, 최영의야”라는 대사로 최배달을 기억한다. 당신이 ‘번역’한 최배달은 어떤가. 당신의 어떤 ‘얼굴’과 겹쳐 있나?

“연기는 나를 그에게 맞추는 것이지, 내 안에 있는 걸 가져다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나하고 겹치는 건 없다. 다 그때그때 그 캐릭터를 연기할 뿐이다.”

※촬영 전, 양윤호 감독은 이 배우에게 최배달의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의했지만, 양동근은 사양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속상했던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음식거리가 너무 빈약했다. 모두들 김밥 몇 줄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밥차’라도 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촬영 내내 고달프긴 했지만, 항상 즐거웠다.”

※말라붙은 입술, 때와 상처로 범벅이 된 손톱, 산발한 머리로 스크린 속 양동근은 일본 가라데의 고수들을 쓰러뜨린다. 시사(試寫)를 본 한 남성 관객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고, 한 여성 관객은 “너무 더럽다”고 했다.

―사람을 때리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썼다는데.

“그렇다. 당연히 진짜 때리지는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정말로 때려야 한다는 거다. 힘들었다. 이건 일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좀 그렇더라. 그렇다고 모든 액션에서 대역을 쓴 건 아니고.”

※‘바람의 파이터’의 포인트는 결국 액션. 감독은 ‘무용수가 갖는 한계’를 비유로 들었다. 수천년 동안 몸으로 했던 표현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보려는 몸부림 같은 것. 그는 “‘매트릭스’처럼 붕붕 날아다닐 수도 없고, 결국은 사실성에 승부수를 두었다”고 했다.

―그런 액션들 때문에 최배달의 내면은 좀 가려지거나 드러나지 못한 것 같다.

“영화 몇 번 더 보셔야겠다. 수학문제도 처음 풀 때와 두 번째 풀 때가 또 다르지 않나.”

※특유의 느릿느릿한 어조로 일관하던 그가 이 지점에서 ‘급발진’했다. 하지만 “영화와 수학문제는 다르지 않느냐”고 되묻자 “그렇다면 제가 할 말이 없고…”라며 다시 예의 그 어조로 되돌아갔다.

―본인이 ‘사회화’되고 있음에 동의하나?

“하도 ‘말 안 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 나도 좀 변하는 것 같다.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나도 말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들조차 ‘너는 너무 말이 없다’고 해서 충격을 먹었다. 뭐, 또 나도 공동체에 속해 있는데 그들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무슨 ‘책임감’ 같은 걸로 표현하지는 말아달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인터뷰 말미, 그는 “속에 있는 얘기 잘 안 해주고, 물어보면 귀찮아하는 게 B형인데, 내가 B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원래 생각도 많이 안 하는 스타일이고, 연기할 때도 그때만 지나면 다 잊어먹고 그러는데, 인터뷰하면서 자꾸 옛날 얘기를 물어보니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몰라요”와 “싫은데요”를 반복했던 이유의 변(辯)이라면, 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