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을 보면서 ‘이제 아시모프(1920~1992)의 보따리가 본격적으로 풀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명이 ‘글 쓰는 기계’였던 다작가 아시모프는 생전에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고, 그중 상당수가 SF소설이다. SF 매니아에게는 필립 딕(1928~1982)이 있다. 아시모프보다 먼저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 온 그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그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임포스터’ ‘스크리머스’ 등의 원작자. (그의 장편 ‘A Scanner Darkly’가 내년 개봉 예정으로 감독이 ‘웨이킹 라이프’의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니 자못 기대가 된다.)

■암울한 세계관의 필립 K 딕

딕은 90년대 미 주류문학계에서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노벨상 후보감이라며 치하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가까운 미래의 불안하고 혼란스런 정체성에 대해 절절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문학 작가들이 20세기 산업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혼돈을 말했다면, 딕은 가상현실과 복제인간까지 가세된 21세기적 정서를 선구적으로 다루었던 파천황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물론 비슷한 배경을 채택한 SF작가가 미래의 과학기술이 야기할 부작용이나 모순, 부조리를 그 자체로서 해부하는 ‘문명론’ 차원이었던 반면, 딕은 그런 사회에서 개인이 겪어야 할 혼란을 설득력 있는 독특한 심리 묘사로 일관되게 다루었다. 또 다른 작가들은 대부분 불안과 혼란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으로 봉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건전한’ 작가들의 대표 격으로 꼽을 수 있는 이가 바로 아시모프인 것이다.

딕과 아시모프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아시모프는 절제된 생활과 성실한 집필 활동으로 생전에 최고의 작가 대접을 받으며 그야말로 ‘범생이’의 삶을 산 반면, 딕의 생은 굴곡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SF작가로서는 한번도 대가의 반열에 오른 적이 없고, 거듭된 결혼 실패에다 말년의 10여년 동안은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정신상태로 지냈다. 본인 스스로는 ‘지구 둘레를 도는 외계 지성체와 영적 교류를 하고 있다’고 얘기한 바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기간이 그가 작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복을 누렸던 시기라는 점이다.

■해결책을 찾는 아이작 아시모프

영화 ‘아이, 로봇’은 ‘로봇공학의 3원칙’이라는 아이디어만 차용했을 뿐 스토리 자체는 아시모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영화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아도 진화한 로봇들이 꾀하는 반란은 아시모프가 생전에 새롭게 추가했던 로봇공학의 ‘0’원칙에 입각한 행동이다. 0원칙이란 ‘로봇은 인류가 위험에 처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그런 상황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인데, 로봇들은 이 0원칙을 1, 2, 3원칙에 앞서는 절대 명령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시모프는 과학기술과 인류의 관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언제나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썼다. 반면에 딕은 미래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늘 혼란에 허덕이는 주인공을 연민과 자학이 뒤섞인 미시적 시각으로 그렸던 작가이다. 요컨대 이 두 작가야말로 21세기의 빛과 그늘을 대변했던 셈이다.

■고급 SF를 찾아 헤매는 할리우드

앞으로는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는 ‘고급’ SF소설들의 영화화 작업이 갈수록 활발해질 것이다. 디지털 SFX기술의 발달로 어떤 장면이든 스크린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영화기술의 빈곤이 어느덧 상상력의 빈곤으로 역전되어 버렸기 때문에, ‘축적된 상상력의 보고’로 SF문학이 각광받게 될 것은 당연하다.

대중의 문화적, 미적 정서가 변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변수. 이제 관객은 SF에 대해 이질감이나 낯섦대신 리얼리티를 느끼며 감정이입한다. 컴퓨터 정보통신과 유전공학의 발달로 SF가 막연한 전망이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딕과 아시모프는 SF와 영화의 본격적인 융합을 알리는 서곡이었던 셈이다.

(박상준·SF칼럼니스트)

아시모프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영화 '아이, 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