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을 끝내고 많이 아팠다”는 전경린은 4일 오후에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다 잠시 포즈를 취했다.

“기생에게 사랑은 가장 큰 자긍심이에요. 그런 황진이의 의식으로 나를 채웠고, 황진이와 합의가 됐을 때 이 소설을 썼어요.”

소외의 벽에 갇힌 현대인들의 열망과 사랑을 탁월하게 그려온 소설가 전경린(42)이 장편소설 ‘황진이’(전 2권·이룸)을 냈다. 전작 소설로 펴내는 대작이다.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나요?

“몸 이데올로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정신과 운명을 썼습니다. 인간의 진화는 너무 오래 전에 끝났고, 500년 전 여인과 지금 여인이 너무 똑같아요. 황진이가 기생이 돼서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는 것까지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파격적이고 미래적인 사람이에요. 야담, 야사도 최대한 존중해서 끌어들였지만 황진이를 남자의 인격을 테스트하는 위험하고 악의적인 인물로 규정한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여성의 몸에 대한 욕망이나 남성들이 솔직하게 유혹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나쁜 일인가요?”

-어떻게 악의적인데요?

“여성의 아름다움 자체를 악랄한 것으로 끌어가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요. 남자가 유혹당하면 위선적이고, 유혹당하지 않으면 진정한 학자로 돼 있는 부분이 그렇지요.”

-이태준, 최인호, 김탁환의 황진이 소설이 있었고, 북한 작가도 황진이 소설을 썼죠. 박완서도 황진이를 쓴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전경린이 황진이를 쓴다고 하자 황진이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고 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쓰신다고 해서 제가 많이 주춤거렸죠. 그러나 그 분이 안 쓴다는 게 확인됐고…. 생에 대한 정직성, 그 정직성으로 인해 생기는 충돌, 그 충돌로 생기는 결과를 정직하게 겪고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것, 어떤 격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 생에 대한 격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저와 같은 점이고, 황진이가 저보다 예뻤을 거라는 점이 다르고요.(웃음) …그러나 그 때문에 많이 절제했고, 조금 더 냉혹하게 쓰고 싶었어요.”

-왜 황진이를 쓰려고 했어요?

“그전 황진이 소설은 전부 남자들이 썼기 때문에 내가 해야 될 몫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큰 역사 속에 한 여인의 의식을 담는데, 황진이의 내면을 읽어갈 자신이 확실히 있었어요. 여고 시절부터 황진이 나혜석 윤심덕 전혜린 같은 여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나타날 때마다 굉장히 깊이 와서 박혔어요. 현대에서는 내가 완전히 뛰어들 만큼 매력적인 스토리가 안 보였어요. 어떤 이야기든 작아 보였고...”

-전경린의 트레이드 마크인 정염과 열정 같은 것을 너무 억누른 것은 아닙니까? 자유혼, 구도자의 면모를 너무 부각시키면서 말이죠.

“정사 장면을 몇 군데 더 넣으려 했는데…, 그게 반복이 필요없더군요. 단 한두 번으로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거예요. 반복해서 보여줄 거는 없어요. 나는 이사종을 그릴 때가 제일 좋았는데, 자기 운명의 모순에 갇힌 상태지만 최대한 자기 억압을 풀었다는 것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