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카메라 가방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급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인 ‘디지털 SLR 클럽’(이하 SLR클럽 www.slrclub.com) 회원들로 정기행사를 갖기 위해 궂은 날씨에도 마다하지 않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디지털SLR 카메라를 손질하고 있는 동호회원들. 최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그대로 뷰파인더에 비춰주는 SLR형 고급 디지털 카메라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고 각자 쌓은 카메라 관련 정보를 교환했다. 또 이날 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카메라 스트랩 한정 판매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트랩은 카메라를 목에 걸 때 사용하는 띠로 ‘SLR클럽’이라는 로고가 선명히 새겨져 있어 회원들의 자부심을 상징하고 있다.

‘SLR’은 ‘Single Lens Reflex’의 약자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그대로 뷰파인더에 비춰주는 기능을 뜻한다. 이런 기능은 대체로 200만원 이상의 고급 디지털 카메라가 채택하고 있어 SLR은 고급 카메라를 상징한다.

SLR클럽 회원은 8만5000여명. 동호회 사이트는 하루에 순 방문자가 5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회원들의 충성도가 높다. 특히 1일 페이지뷰가 300만건을 돌파하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회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SLR클럽은 게시판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해 철저히 회원들의 질 관리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티즌들간 욕설을 찾아보기 힘들고, 각종 고급스러운 정보가 가득하다. 사진을 싣는 게시판은 자신의 최고 작품을 올리는 ‘작품갤러리’를 비롯해 주제별로 해당 사진을 담는 ‘주제갤러리’,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조언을 얻는 ‘습작갤러리’ 등 3개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작품갤러리는 3일에 1개 작품만 올릴 수 있으며 주제갤러리와 습작갤러리는 하루에 1개만 업로드가 가능할 정도로 까다롭다.

이 클럽 회원들이 보유한 디지털 SLR 카메라는 소형 중고차 가격에 못지않을 정도로 고가인 데다 회원들이 실수요자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디지털카메라 업체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니콘사의 D70 카메라가 국내에 출시되자, SLR클럽 회원은 발매 일주일 만에 D70의 셔터스피드를 높이면 색조 차이가 나거나, 태양 같은 강한 광원에서 색채가 흐려지는 등 4가지 문제점을 발견해냈다.

이에 따라 국내 판매를 맡은 아남니콘은 1주일간 이용자가 원할 경우 반품을 해주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SLR클럽은 제조사인 니콘이 회원들의 지적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본사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무상서비스 1년 연장, 4가지 경고문 삽입, D70용 핸드스트랩 무료 배포 등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SLR 운영자 반대걸(29)씨는 “회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면서 “출시된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을 경우 커뮤니티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기 위해 AS게시판을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