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때 황폐해졌던 땅을 우리 손으로 푸르게 바꿔 놓았습니다. 나무가 자랄수록 보람도 커집니다. 함께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과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인근 붕타우바리아주(州). 베트남전이 끝난 1975년 이 곳의 열대림은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그로부터 29년 후 이 일대는 다시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 그것도 무질서한 정글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리된 조림(造林) 숲이다. 녹원(綠園)은 붕타우바리아주 쿠엔목 등 호치민 인근 1만1596㏊(약 3500만평)에 걸쳐 펼쳐져 있다. 여의도(835㏊) 면적의 14배다.
3.3m 간격으로 나무 종류에 따라 1㏊당 1670~3300여그루씩 성인 키의 몇 배나 되는 아름드리 나무가 심어져 있다. 어림잡아 3000만그루가 넘는다. 바로 산림조합중앙회가 10년 넘게 일궈온 나무의 바다다. 산림조합은 해외 임산 자원 개발을 통한 안정적 목재 공급을 위해 1994년 베트남제지연합회와 합작회사를 세우고 베트남에서 인공 조림 사업을 펼쳐 왔다. 산림조합은 2002년 베트남 지분을 인수, ‘산림조합 비나(VINA)’라는 단독 법인을 만들었다. ‘VINA’는 ‘베트남(Vietnam)’의 준말이다.
‘산림조합 비나’의 이근종(44) 사장은 이 광활한 수해(樹海)를 가꾸는 지킴이다. 이 사장은 2000년 1월부터 4년째 호치민에서 일하고 있다.
“30년 동안 방치돼 있던 잡목을 자르는 것만 해도 큰일이었습니다. 숲에는 이제 야생동물이 뛰어 다닙니다. 나무를 관리하는 현지인들이 숲에서 잡아 만든 두더지·고슴도치 요리도 함께 먹었죠.”
임금 싸고 노동력 풍부… 토지도 비옥해
베트남은 국토(33만㎢)의 58%인 19만㎢가 산지이며 고온다습한 열대 기후라 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다. 5월부터 6개월 동안 우기(雨期)가 이어진다. 요즘은 기온이 35~36도를 오르내린다. 이 사장은 “이제는 적응이 됐지만 처음에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월 3만~4만원의 싼 임금에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 비옥한 토지도 베트남이 해외 조림 지역으로 적합한 요건이다. 최근에는 한류(韓流)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 작업 여건 또한 한층 나아졌다.
산림조합이 운영하는 조림지는 호치민 인근 4곳에 나눠져 있다. 호치민에서 가까이는 120㎞, 멀게는 180㎞ 떨어져 있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3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거리다. 이 사장은 수시로 각각의 조림지를 돌아본다. 각 조림지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는 승용차로 2~3시간을 달려야 한다.
‘비나’의 한국인 직원은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직원 1명이 전부다. 공장에서 일하는 100여명과 수목 관리 인원 50~60명 모두 베트남 사람들이다. 이 사장은 “고용 효과도 있어 현지인들도 우리 일을 환영한다”며 “나무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과의 우정도 함께 심는 셈”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조림지에 심는 나무는 빨리 자라는 속성수(速成樹)인 ‘아카시아’다. 펄프용으로 쓰이는 아카시아는 국내에서 흔히 아카시아라고 오인되는 아까시나무와는 다른 종류다. 아카시아는 심은 지 5~6년 후 직경 15~20㎝, 높이 15~17m로 자라 국내 참나무보다 성장 속도가 3배나 빠르다고 한다. 보통 6년 후에 벌채한다. 벌채한 나무는 펄프 가공 전 단계의 나무 조각인 ‘칩’ 형태로 가공해 전량 한국으로 들여온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에서 1년에 사용되는 80만t의 칩 가운데 약 5%(4만t)를 공급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국내에서 필요한 칩의 70%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비나는 앞으로 베트남에 매년 2000㏊씩 조림할 예정이다.
“베기 위해 나무를 기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벌채한 곳에 나무를 바로 심기 때문에 녹지는 유지됩니다. 어차피 목재는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남벌이 아닌 체계적 조림을 통한 수목 관리는 환경 훼손을 막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매년 벌채하는 면적은 600~1000㏊다. 아카시아는 지력(地力)을 떨어뜨리는 대신 땅을 비옥하게 하는 성분을 분비해 벌채한 자리에 금방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재조림 지역 외에 추가로 1000㏊ 이상씩 조림, 매년 조림지는 늘어간다. 또한 벌목한 곳에 묘목을 다시 심은 다음 나무가 자라기 전 땅을 놀리지 않기 위해 나무 사이에 콩·옥수수 등을 심어 수확한다.
“평야에 조림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맹수 등 자연적인 위험 요소가 많지 않았고, 베트남 정부가 임산 자원 개발에 적극적이어서 수월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인들과 관계도 좋았고요. 다행이죠.”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면 베트남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빈 땅을 상업용지 등으로 전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림지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족 모두 베트남으로 옮겨와
임업과 전혀 관계가 없던 이 사장이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그는 1997년 산림조합에서 해외사업 관리 경력 직원을 뽑는 자리에 입사했다. 이 사장은 입사 후 산림조합의 해외투자사업이었던 베트남 칩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게 인연이 돼 베트남 현지 법인 사장으로 부임했고 조림 업무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 사장의 가족은 모두 2002년 베트남으로 옮겼다. 이 사장은 “나무 곁에서 지내다보니 마음도 편해지는 느낌”이라며 “앞으로도 기회가 닿을 때까지 나무와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산이 많지만 목재의 대부분은 수입합니다. 국내 산림을 잘 관리해 자급 부분을 늘려야죠. 나무를 심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관리를 해야죠. 건강한 숲을 만들고 가치 있는 목재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 해외 조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 기업들의 해외 조림 면적은 9만5000㏊(2억8700만평)로 여의도 면적의 114배에 이른다. 해외 조림 사업에는 코린도·한솔홈데코 등 8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조림 사업을 하고 있는 코린도가 3만1534㏊(약 9540만평)로 가장 크다. 1만㏊ 이상 업체로는 한솔홈데코(호주·뉴질랜드, 2만5138㏊), 남방개발(인도네시아, 1만3785㏊), 산림조합 비나(베트남, 1만1596㏊) 등 3곳이다. 해외에서 조림한 나무는 펄프·원목·합판용으로 사용된다. 해외의 조림수는 국내 산림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빨라 수종에 따라 심은 지 7~28년이면 상품화할 수 있는 데다 1㏊당 목재의 시장가치도 5배 이상 높아 경제성도 좋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해외 조림은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2008년부터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감축해야 하는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상태다. 기후변화협약이 강제성을 가진 국제 규약으로 발효될 경우, 공장을 운영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배출하려면 탄소가스가 배출된 만큼 숲을 확보하는 등 ‘탄소 배출권’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급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탄소배출권 확보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승범 주간조선 기자(sbkim@chosun.com)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