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사뮈엘 베케트·버나드쇼·예이츠…. 영문학의 쟁쟁한 별을 탄생시킨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그중에서도 ‘조이스의 도시’로 불린다.
요즘 더블린에서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를 기리는 사상 최대의 문학 축제가 한창이다. 바로 ‘리조이스(ReJoyce) 더블린 2004’ 페스티벌. ‘블룸스데이(Bloomsday)’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기념행사다.
문학팬들은 매년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란 이름으로 축하해왔다. 1904년 6월 16일은 ‘20세기 영문학의 혁명’이라는 평을 받는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에서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Bloom)이 더블린 시내를 헤매고 돌아다닌 날이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난해한 문장과 구성뿐 아니라 소설을 이루는 방대한 신화와 상징체계 때문에 악명이 높다.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도입부를 넘기지 못하고 집어던지기 일쑤다.
조이스는 “나는 ‘율리시즈’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숨겨놓았다”며 “앞으로 수백년간 대학 교수들은 이를 풀어내느라 바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이것이야말로 불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는데 그의 예언대로 ‘율리시즈’ 관련 논문과 각종 해설판 발간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거대한 ‘조이스’ 관광산업을 만들기도 했다.
매년 6월 16일이면 조이스 팬들이 실크해트 등 20세기 초 의상 차림으로 해변의 ‘마텔로 탑-레스토랑-펍’ 등 블룸의 동선을 따라 순례에 나선다. 조이스가 소설의 배경을 6월 16일로 잡은 것은 그날이 아내 노라 버나클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날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블룸스데이’ 기념행사는 지난 3월 일찌감치 공식 개막, 8월까지 이어진다. 하이라이트는 ▲조이스가 빨간색, 파란색 잉크로 고쳐 쓴 ‘율리시즈’ 초고와 초판 전시 ▲영화 ‘블룸’ 개봉 ▲전 세계 학자 1000명이 참석, 조이스 관련 논문 400편을 발표하는 국제 심포지엄 등이다. ‘1만인을 위한 아침식사’도 마련된다. 메뉴는 콩팥 볶음. 소설에서 블룸이 ‘입천장에 희미한 오줌냄새가 풍기는 돼지 콩팥’을 먹는 장면을 본뜬 행사다.
더블린은 말 그대로 ‘조이스의 도시’. 조이스 기념관이 3곳이고, 조이스 다리와 조이스 동상이 서 있다. 기념품 가게마다 조이스 상품도 가득하다. 거리 곳곳에는 ‘율리시즈’에 등장한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1904년 더블린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건너간 조이스는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등에서 더블린과 아일랜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대문호가 자신의 고향을 ‘실패와 소란과 불행의 도시’라고 한탄했을 그때만 해도 아일랜드는 서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였다. 100년 후, 조이스를 포함한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이제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강국으로 꼽히고 있다.